‘춥고 바람 많이 불던 겨울 밤’ (112쪽) 박 교장의 집 행랑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난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112쪽) 가늘어가던 그 소리는 어머니가 내지르는 고함 소리에 다시 굵어지기 시작하는데, 이 글을 읽는 이는 열두 살 먹은 소년으로 ‘보통학교 사년급에 다니’(112쪽)고 있는 ‘박 교장의 집 행랑아범의 아들’(112쪽) 진태다.
이튿날 아침, 진태는 ‘문 뒤에 세워 놓았던 모지랑비를 들고’(113쪽)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기 시작한다. 처음 ‘몸 가볍고 마음 상쾌한 기분으로’ (113쪽) 들었던 빗자루는 어느새 ‘팔이 떨어지는 것 같고 허리가 부러지는 듯’(113쪽)한 고통을 가져오지만, 매일 아침 마당을 쓰는 것이 그의 직분이기에 진태는 하던 일을 멈출 수가 없다. 그 사이 어머니는 밥을 짓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고, 아버지는 인력거를 끌기 위해 병문으로 나간다.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 등의 대표작을 가진 나도향의 작품성향은 초반에는 감상적이다가 후에는 사실주의로 접어들었다는 평이 대다수다. 그리고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탐미주의를 버리지 않았기에 완벽한 현실을 반영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행랑자식에서 나도향은 철저히 사실에 입각하여 현실적이지만, 나름의 감상과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