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유럽의 살롱문화와 카페문화가 어떤 기원을 두었는지 살펴보고
살롱과 카페문화가 프랑스 혁명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살펴본 글
목차
Ⅰ. 머리말
Ⅱ. 살롱문화와 카페문화의 기원
Ⅲ. 18세기의 살롱문화와 카페문화
1. 마담 드 랑베르의 살롱
2. 마담 드 탕생의 살롱
3. 마담 죠프랭의 살롱
4. 마담 뒤 드팡의 살롱
5. 마드모아젤 레스피나스의 살롱
6. 18세기의 카페문화 - 이스탄불의 카페
Ⅳ. 살롱문화, 카페문화가 프랑스 혁명에 끼친 영향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살롱’은 문인·저술가·현학자·정치인·예술가 등이 드나들던 ‘대화의 장’이자 ‘토론의 장’이었으며 문화와 지성의 산실이자 중개소와 같은 역할을 했다. 살롱은 대부분 여성에 의해 개장되고 운영되었고 살롱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교양과 재치를 겸비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여가를 즐길 만한 여유가 있었다. 초창기의 살롱은 주로 사교 중심의 문학공간의 성격을 띠었으나, 18세기후반부터 점차 철학과 정치에 대한 토론 및 활발한 사상의 교류의 장으로 변모하면서 새로운 살롱문화가 형성된다. 이러한 살롱문화는 신분에 관계없이 거침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카페문화와 함께,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계몽사상을 창출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면 지금부터 살롱문화와 카페문화의 기원과 발전양상을 알아보고, 그것이 프랑스 혁명에 끼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살롱문화와 카페문화의 기원
1. 살롱문화의 기원
사람들이 모여 대화와 토론을 하며 자유롭게 사교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의 살롱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나 로마의 프라자(Plaza), 포럼(forum), 휴게실(cubiculum)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살롱의 직접적인 기원은 문인들이 모였던 서클과 같은 ‘문학계’, 그리고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무젠호프’ 로 볼 수 있다. `문학계`에 대한 기록은 1417년 처음 나타나고, 16세기 후반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각종 학술적인 모임 겸 사교의 장이 되었다. 17세기에 이르면 ‘문학계’의 회원들간에 긴밀한 연결고리가 생기고, 이곳에서 사람들은 문학작품을 읽고 음악을 즐기고 학문을 토론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는 살롱과 흡사한 ‘무젠호프’가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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