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백제][신라][고구려][고려][백제의 무령왕릉][신라의 흥덕왕릉][고구려의 왕릉][고려의 왕릉][무령왕릉][흥덕왕릉]백제의 무령왕릉, 신라의 흥덕왕릉, 고구려의 왕릉, 고려의 왕릉(백제, 신라, 고구려, 고려)
- 최초 등록일
- 2009.03.10
- 최종 저작일
- 2009.03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5,000원
소개글
백제의 무령왕릉, 신라의 흥덕왕릉, 고구려의 왕릉, 고려의 왕릉에 관한 심층 분석
목차
Ⅰ. 백제의 무령왕릉
1. 무령왕릉
2. 무령왕 - 백제의 25대 왕
Ⅱ. 신라의 흥덕왕릉
1. 흥덕왕릉
2. 흥덕왕 - 신라 제42대 왕(재위 826˜836)
Ⅲ. 고구려의 왕릉
Ⅳ. 고려의 왕릉
1. 고려 태조 현릉(太祖 顯陵)
2. 공민왕릉(恭愍王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백제의 무령왕릉
1. 무령왕릉
1971년 7월 공주의 송산리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에서는 모두 108종류 1,90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물이 왕과 왕비임을 알려주는 문자가 새겨진 소위 지석 2장이다. 무령왕릉은 삼국 시대 무덤 가운데 최초로 주인과 매장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무덤이다. 먼저 왕의 것을 보면 앞면에 왕의 이름과 사망일 등 총 53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2간지 9자와 10지 중 8자를 새겼다. 그리고 왕비의 것에는 역시 앞면에 왕비의 사망 연월일과 개장일 등 41자와, 뒷면에는 왕을 위해 돈 1만 문(文)을 가지고 땅을 사서 왕의 묘을 만든다는 내용의 57자를 새겼다. 내용을 보면 ꡒ영동대장군인 백제의 사마왕 융은 523년 5월 7일 죽었고 525년 8월 12일에 개장하여 묘를 모셨다.ꡓ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뒷면에는 ꡒ돈 1만 문을 가지고 525년 8월 12일에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토왕, 지백, 토부모, 지하의 여러 관리 및 지방장관에게 땅을 사서 무덤을 쓴다. 이를 위하여 증서를 만들어 증명하니 어떤 법령도 이 영역에 미치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이 명기되어 있다. 이는 왕 또한 천지의 모든 만물의 왕이 아니라 인간세계에만 국한되는 왕으로 보고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자가 새겨진 돌판을 지석, 능석, 묘지석 등 학자에 따라 저마다 제각기 부르고 있다. 지석이란 무덤 속의 주인공을 가리키기 위해 돌에 글을 새겨둔 것으로 묘 위에 세우는 묘석
참고 자료
▷ 김영사·민현구, 고려500년 의문과 진실
▷ 김은택, 고려태조왕건
▷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2002), 토지박물관 학술조사총서 제14집, 경기도 : 남한산성 발굴조사보고서
▷ 한국문화유산답사회(2004), 돌배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