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의 한국 부동산개발의 변천사
- 최초 등록일
- 2009.02.19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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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이후의 한국 부동산개발의 역사 및 변천사에 대한 조사
목차
1. 서 론
2. 본 론
1) 일제강점기
2) 광복이후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3) 1970년대
4) 1980년대
5) 1990년대
6) 2000년 이후 현재
3. 결 론
본문내용
1. 서 론
-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면적과 수도권의 높은 인구밀도 등 국토이용의 물리적 한계로 인하여 오래전부터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이 중시되어 왔다. 국토의 이용에 대한 계획과 방안은 지금까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한가지로서 인식(認識)되고 시행(施行)되고 있으며 이러한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공공(公共)과 민간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개발의 변천(變遷)을 살펴보면 주로 주거단지건설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곧 주거가 사회의 가장 기초(基礎)가 되는 단위로서 국민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민생활의 질은 주택에 의하여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동산개발 사업 중 주택공급사업은 국가의 가장 주요한 사업으로서 추진되었고, 추진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본 레포트 에서는 주거단지개발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부동산개발사업의 변천(變遷)을 일제강점기이후 근대부터 시대별로 조사하였고, 이러한 부동산개발사업이 사회의 모습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논하였다.
2. 본 론
1) 일제강점기
-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부동산개발사업 으로서 주택 단지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가지계획령에 규정된 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비롯되지만 본격적 부동산(주거단지)개발사업이 이루어진 것은 1941년 주택영단(住宅營團)이 설립되면서부터이다. 이 영단(營團)이 조성한 주택단지로는 서울의 도림단지(현 영등포구 문래동)로서, 격자형의 넓은 도로가 계획되고, 각 블록마다 녹지가 배치 되었으며 병원, 목욕탕, 이발소, 상점 등 후생시설과 공공시설이 계획되어 있었다. 또한 상도(上途)단지는 3개의 원형 로터리를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방사형 도로를 만들었으며, 구릉의 수목들을 그대로 살린 자연스러운 조경설계기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주택난 해소를 빌미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구체화 하기 위해 일본의 주거 문화를 강요하려고 한 측면이 없지 않은 관계로 광복 후 에는 선호되지 않았다.
참고 자료
. 주택문제의 해법 (노영훈, 삼성경제연구소, 2005. 10)
. 수도권과 주택문제 (권영우, 성신여자대학출판부, 1994)
. 2010 주택시장 트렌드 (LG경제연구소, 2005. 05. 19)
. 대한민국 신도시 경쟁력 (손대일, 전자신문사, 2006. 09)
. 미래지향적 수도권정책 경제학적 접근 (김경환, 서강대학교출판부, 2002. 02)
. 도시정비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참여주체간 협력방안 (배웅규, 2005. 0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