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관인문학과 왕조사업의 표리
- 최초 등록일
- 2009.02.06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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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사 수업시간에 정리한 관인문학과 왕조사업의 표리입니다. 좋은 점수를 받은 레포트이니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차
관인문학(官人文學)
7.5.1. 관인문학의 성격 문제
7.5.2. 집현전 출신의 문인들
7.5.3. 전성기의 수준과 문제의식
7.5.4. 중종 시절 이후의 동향
본문내용
관각(館閣)문학, 관료문학으로도 불린다. 사대부란 말이 "벼슬하지 않고 독서를 하면 사(士)요,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大夫)"라는 말의 합성어인 것처럼 이들은 문학적인 교양을 지닌 문인학자인 동시에 정치행정을 담당하는 관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관인의 정치행위와 문인의 문학행위가 분리되지 않아 관인이 곧 문인이고, 문인이 곧 관인이 되는 사회였다. 사대부들은 지방의 중소지주들로서 안정된 경제적 기반 위에서 독서를 통해 문학적 교양을 쌓아 관인으로 진출했다. 이들은 벼슬길에 나아가 임금을 돕고 백성을 보살피며 왕명에 따라 움직이는 관료로서의 생활과 시골에서 한가로이 노닐며 도(道)를 닦는 처사로서의 생활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대부 생활의 양면성은 이들의 문학에서도 양면으로 나타났다.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문장을 추구하는 관인문학과 세상을 벗어나 강호의 자연 속에서 즐기는 강호문학(산림 문학)이 그것이다. 여말선초의 관인문학과 처사문학 〈한국문학연구입문〉 : 이병혁, 지식산업사, 1982
7.5.1. 관인문학의 성격 문제
조선왕조를 건국한 주체세력은 사대부인 사족(士族)과 향리인 이족(吏族)을 나누고 사족으로의 지배신분 확대를 막았다. 그러나 한정된 관직과 토지에 비해 늘어나는 사대부 때문에 내부적으로 분열과 갈등이 심해졌고, 그 문제들은 사상과 문학에서의 경쟁으로 나타났다. 이에 사대부는 개국공신이나 그 후예로서 중앙 정계에서 확고한 기득권을 지키는 훈구파(勳舊派)와 중소지주의 신분으로 중앙 정계로의 진출을 꾀하며 새 왕조 창건의 명분을 내세우는 사림파(士林派)로 나누어졌다. 이들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맞췄지만 그 해석과 관계설정의 기준은 달랐다. 훈구파는 사장(詞章)을 내세우며 문장을 가다듬는 능력을 중요시했고, 사림파는 성리학을 명분이 아닌 도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렇게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되면서 사상과 문학의 노선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관각(館閣)은 문학을 관장하는 홍문관(弘文館), 예문관(藝文館), 성균관(成均館) 등의 관청을 총칭한 말이다. 여기서 하는 문학을 관각문학(館閣文學)이라 하는데, 여기서 관인문학과 서로 겹치지만 구별이 필요하다. 관각문학의 범위는 조정의 공식적인 문학 창작에 한정되지만, 관인문학은 관인 집단이 사사로이 하는 문학 행위까지 총칭한다.
참고 자료
한국문학통사 2 (제3판) : 조동일, 지식산업사, 1996
여말선초의 관인문학과 처사문학 〈한국문학연구입문〉 : 이병혁, 지식산업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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