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관찬기관의 변천
- 최초 등록일
- 2009.01.20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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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일제강점 이전의 관찬기관
2. 조선총독부 中樞院의 사서편찬
3. 朝鮮史編纂委員會의 설치
4. 朝鮮史編修會
가. 조선사편수회의 설치
나. 조선사편수회의 구성
다. 조선사편수회의 활동
라.『朝鮮史』의 성격
5. 현대의 관찬기관
본문내용
1. 일제강점 이전의 관찬기관
개항 이후에 역사서술이 거론되는 것은 1894년 6월의 갑오경장을 시작할 때이다. 군국기무처는 의정부에 編史局을 설치하자고 건의하였다. 그래서 의정부에 ‘편사국’이라는 관청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드러난 활동이 없는 형식상의 기관이었던 것 같고, 실상 역사편찬은 學部 대한제국 때에 교육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고종 32년(1895)에 학무아문을 고친 것이다.
에서 간행하게 되었다.
1895년 한성사범학교와 성균관 경학과와 4개의 소학교를 설치하고 학과정도표가 발표되었는데, 거기에 ‘本國史’ 과목이 설치되었다. 이것은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시급한 것은 ‘본국사’ 시간에 쓸 교과서의 편찬이었다. 그래서 1895년 학부에서는『조선역사』,『조선역대사략』,『조선약사』의 3서를 편찬하였다.
이 3서는 한국사가 종래의 한문이 아닌 국문(국한문 혼용)으로 서술되고, 연호 사용에서도 종래의 중국 연호가 아닌 조선건국기원(1392)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편년체 방식을 답습하였고 왕실 중심의 명분론 시각 등 중세적 잔영이 완연하기 때문에 근대사학의 저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조선약사』의 경우는 편년체를 떠나 왕조의 변천은 요점만 밝히고 각종 제도와 사회생활에 비중을 두고 서술했다. 서술방식만큼은 그때로서는 혁명적 변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후 1899년 학부 편집국에서『東國歷代史略』『大韓歷代史略』『東國歷史』등의 3서가 출간되었다. 앞의 두 책은 김택영이, 뒤의『동국역사』는 현채가 편찬하였다. 이 3서는 편년체를 답습했는데 내용은 한결 1895년의 3서에 비해 한결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우리민족에 의한 역사서술은 私撰으로 전환되어갔다. 관찬사서는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점이후 조선총독부 주관 하에 이루어졌다.
2. 조선총독부 中樞院의 사서편찬
병탄 이후 일제의 韓國統治基調는 민족동화정책이었다.
참고 자료
1. 편집부 옮김,『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 시인사, 1986
2. 김성민,「朝鮮史編修會의 組織과 運用」, 국민대 대학원, 1993
3. 조동걸,『韓國 民族主義의 發展과 獨立運動史硏究』, 지신산업사, 1993
4. 조동걸 외 공저,『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하』, 창작과 비평사, 1994
5. 우리역사 바로알기 시민연대(http://historyworld.org)
6. 국사편찬위원회(http://www.nhcc.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