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통해서 본 `애덤스미스`
- 최초 등록일
- 2009.01.13
- 최종 저작일
- 2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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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스테디셀러인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통해 애덤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를 정리해보았다.
도서감상문이라기 보다는 이 책의 핵심요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목차
● 국부론이 나오기까지- 애덤스미스의 생애
● 철학자로서의 스미스
● 중농주의와의 관계
● 국부론에 대하여
● 자유방임시장 경제의 원리
● 분업
● 지역과 국가 간의 분업
● 일반인을 위한 주제
● 정책과 실행
*국내상업 제한규정
*국제무역 제한규정
● 애덤스미스의 재림?
본문내용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통해서 본
애덤스미스
● 국부론이 나오기까지- 애덤스미스의 생애
중세부터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시기까지는 오직 신학자들, 신만을 위한 세상이었다. 세상의 모든 자연현상들은 종교적교리로써만 설명되어져 온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초엽의 유럽은 베이컨이나 코페르니쿠스를 본받아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였다.
그 시초로 데카르트는 방법적회의를 통해, 중세에 가려져 죽었던 ‘주체’를 되살려내고, 실용적 과학을 통해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갈릴레이는 수학과 실험의 힘만을 통해서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뉴턴으로 이어져, 중력법칙,물리운동의 법칙, 미적분등을 발견에까지 이르러 과학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시대를 근대라고도 칭하는데, 이는 중세의 신학의 그늘에서 인간의 주체가 벗어나 독립을 한 것을 뜻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애덤스미스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1723년 에든버러의 건너편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 커칼디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세관검사원이었으나, 그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나게 되고, 훗날에는 어머니를 모시며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게 된다.
우등생이였던 그는 14세 때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였고 처음엔 성직자가 되려고 하였으나 흄의 회의론을 접한 후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1748년부터 글래스고 대학에서 논리학을 가르쳤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애덤스미스는 생애에 경제학을 한번도 가르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는 아직 경제학과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경제학과가 생긴 것은 1903년에서야 가능해진다.
● 철학자로서의 스미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을 통해서 이미 철학자로 알려져 있었다.그는 도덕적 가치들의 논리적 근거를 탐구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타인을 위한 도덕적 결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딜레마가 주 연구대상이였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공명정대한 관찰자’의 존재를 통해 해결한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행동을 살펴본다고 인식하면서 양심에 따라 이기주의보다는 긍휼과 동정심에 따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 중농주의와의 관계
중농주의자들은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연의 법칙을 알아내고자 했으나, 계몽주의자들과 결정적으로 다른점은 자연을 지배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은 신의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단지 자연탐구의 목적은 이러한 순응을 더욱 쉽게 함으로써 풍요를 추구하는 데 있었다.
중농주의자들은 중상주의와 달리 부란 화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서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농업분야만이 부를 창출할 수 있으며, 상공업을 비롯한 기타산업은 가치를 창출할 수 없었다. 생산업자들은 본인이 투입한 만큼만을 얻게 되고 상인들은 부를 재분배할 뿐이다. 따라서 중농주의자들은 농업육성책을 주장하였고 토지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시킬 것을 주장하였다.또한 지주들에 대한 과세를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유일하게 ‘생산적인 산업’인 농업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토드부크홀츠. 이승환옮김, 김영사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