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 사회주의 운동 : 김준성의 생애와 사상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8.12.19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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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들어가는 말
현재 한국 기독교는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초기 한국 기독교도들도 그러했을까? 우리는 본 수업을 통해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본 발제는 먼저, 20년에서 30년대에 목사, 교육가, 사회운동가로 활동한 김준성의 생애와 사상을 알아보고, 그가 이해한 기독교 사회주의가 무엇이었으며, 왜 기독교 사회주의를 언급할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김준성의 생애를 정리하고, 다음으로 기독신보에 연재되어 있는 그의 글을 살펴볼 것이다.
1. 김준성의 생애
김준성 목사는 1898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출생하였다. 10세에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일본에 유학하였다. 유학중이던 1926년 제일 한국 YMCA의 부총무로 활동하였고 1928년 귀국하여 원산 YMCA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이때에 3년제 남자 중학인 「원산기독교청년학관」을 설립하고 가난한 기독교
목차
들어가는 말
김준성의 생애
김준성의 사상
나가는 말
본문내용
1. 김준성의 생애
김준성 목사는 1898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출생하였다. 10세에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일본에 유학하였다. 유학중이던 1926년 제일 한국 YMCA의 부총무로 활동하였고 1928년 귀국하여 원산 YMCA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이때에 3년제 남자 중학인 「원산기독교청년학관」을 설립하고 가난한 기독교 가정의 학생들과 사상이 불온하다고 학교에서 쫓겨난 청년들을 지도하였고, 덴마크식 협동조합도 설치하여 농민들의 권익향상에도 힘썼다. 29년 광주학생운동때 원산에서는 기독교청년회학관 학생들이 선두지휘를 했으며, 31년 함흥 영생중학교의 교사겸 학생감으로 부임하여 학생운동을 크게 전개시켰다. 때마침「조선공산당」본부가 흥남 및 함흥지방으로 이동하여 학생 및 교회를 배경삼아 이에 맞섰다. 공산주의만 아니라 무정부주의에 대해서도 「종교는 과연 아편인가?」,「공산주의와 기독교」,「유물사상과 유심론」,「천국운동」,「지상천국 건설운동」,「기독교사회주의」등 제목으로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열변을 토했다. 그리하여 그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있어서 한국기독교사회주의운동의 주축을 이루었으며 따라서 반 일본제국주의운동에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결국 학교에서 파면되었다. 그는 그 후 북간도에서 용정 은진중학교의 교사로 재직했으나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어서 35년 캐나다로 출국, 거기서 신학을 전공했다. 그 뒤 목사안수를 받고 John Star Kim 이란 이름으로 미국 뉴욕 등지에서 문서선교에 힘쓰다가 귀국하지 못한 채 78년 9월 28일 뉴욕에서 별세하였다. 김준성 목사의 문서활동의 주제는 거의 사회주의와 관계되어 있다.「기독신보」에는 1930년대 초부터 26회에 걸쳐 ‘기독교와 사회주의’라는 제목으로 연재하였고 「진생」에는 ‘유물이냐 유심이냐’의 제목으로 5회 연재하였다. 그리고 「청년」지에는 ‘유물이냐 유심이냐’의 후편으로 2회 연재하였다. 이 연재기사들 중에서 「진생」과「청년」의 유물론에 관해서는 주로 철학적으로 유물론을 살펴 본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