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문화의 이해(매매, 상속, 학파, 정치, 비판)
- 최초 등록일
- 2008.12.12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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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양반문화의 매매, 상속, 학파, 정치, 비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주요 키워드 : 양반, 매매, 상속, 분재, 노비, 깃급, 화훼, 별급, 퇴계, 율곡, 남명, 성혼, 학파, 영남학파, 기호학파, 동인, 서인, 북인, 남인, 노론, 소론, 예송논쟁, 환국정치, 당쟁, 탕평책, 민생
목차
1. 조선시대 양반의 매매와 상속 (경제생활 사회문화사적 의미)
2. 조선시대 학파형성과 정치집단(정파)과의 관계, (흐름과 관계 위주 설명)
3. 양반문화의 비판과 결론
본문내용
1. 양반의 매매와 상속 (경제생활 사회문화사적 의미)
양반이라 함은 벼슬과 학식이 필수 조건이었지만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재산이 필수적 요소였다. 양반사회에서는 표면적으로 근면, 검소, 청백 등 유학적 개념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재산의 증식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활동은 천한 것,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여기었다. 하지만 부의 추구는 인간의 보편적인 활동이므로 양반 사회 속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반의 재산 형성과정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부모로 물려받은 상속과 매매활동에 의한 재산의 증식 방법이다. 재산의 상속은 비교적 자식 간의 차별을 두지 않고 각자 평균적으로 균분하게 나누었다. 여기서의 균분하게 분배했다는 의미는 수량적 의미의 균분이 아니라 각각의 가치의 모든 면을 고려한 진정한 의미의 균등한 재산 분배였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와 고려를 한 이유는 훗날 분쟁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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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시대 학파형성과 정치집단(정파)과의 관계
조선 초기 학계는 관학과 같이 실용적 학문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설은 존재하지 않았고, 이것은 학파가 형성되지 않는 이유였다. 16세기 중엽 이후 퇴계와 율곡의 시대에 이르러 주자학이 이론적으로 심화되면서 이론적 학문의 깊이가 깊어지게 된다. 조선 초기의 학문이 위인지학, 즉 다른 사람을 위한 학문이었다면 이 시기의 학문은 위기지학, 즉 자기수양을 통한 학문이었다. 인간을 인격체로 만들기 위한 교육으로서 지식보다 인간다운 것을 추구하는 학문 풍토에서 학설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학파가 형성되었다.
참고 자료
수업시간 내에 들은 내용을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