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목조희랑대사
- 최초 등록일
- 2008.12.09
- 최종 저작일
- 2008.05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희랑대사는 나말여초에 활동한 화엄학의 대가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통일에 이바지한 고승이다. 그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각 기록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가 9세기후반에서 10세기전반에 활동한 인물로 보인다. 그것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라는 연대를 중심으로 놓고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생년은 곧 목조희랑조사상의 연대와 부합되는 것으로, 늙은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 조각은 그가 입적하기 얼마 전이나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해인사의 역사
Ⅲ. 희랑대사 생애와 업적
Ⅳ. 고려전기(후삼국) 조각사론
Ⅴ. 목조희랑대사상
1.상의 작자와 봉안장소
2. 양식적인 특징과 편년
3. 재료와 제작기법
Ⅵ. 맺음말
참고문헌
[도면 사진 목차]
<도면1-실측도>
<사진1-정면>
<사진2-얼굴>
<사진3-가슴 구멍>
<사진4-손>
본문내용
즉 mirra가 될 시신에 삼베를 감아 그 위에 옻칠을 바르고 고운 톱밥 등으로 옷무늬등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채색하여 乾漆像과 비슷하게 하는 mirra像이다. 둘째로 木心乾漆像인데 뼈대를 나무로 하고 그 위에 베를 바른 후 옻칠하고 그 위에 채색하는 것이다. 셋째로 시신을 화장해서 점토와 개어 塑像을 만드는 것으로 芬皇寺의 원효상이 이에 해당된다. 순수한 소상으로 많이 만들어졌으니 興輪寺 금당 十聖이 이에 해당한다. 이외에 희랑대사상처럼 나무로 만드는 것도 크게 성행하였는데 이 나무에도 mirra상이나 소상처럼 삼베를 바르고 그 위에 채색하고 있는 것이다
Ⅵ. 맺음말
희랑대사는 나말여초에 활동한 화엄학의 대가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통일에 이바지한 고승이다. 그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각 기록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가 9세기후반에서 10세기전반에 활동한 인물로 보인다. 그것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라는 연대를 중심으로 놓고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생년은 곧 목조희랑조사상의 연대와 부합되는 것으로, 늙은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 조각은 그가 입적하기 얼마 전이나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양식적으로 신라말기에 유행했던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표현하였으며, 이상적 사실주의가 아닌 현실적인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당시 희랑대사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채색은 후에 개칠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처음의 채색은 지금과 달리 도금으로 화려하게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합해서 말하면 이 작품은 우리나라 初期高僧肖像彫刻의 가장 확실한 예이며 가장 오래된 최고의 목조조각품이다. 또한 나말여초의 북악파의 宗主이던 화엄종의 희랑대사의 진영이 분명하며 양식적 특징은 사실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신라하대의 현실적사실주의의 전통을 이어받고 또한 새로 대두되던 신흥 발랄한 조각기법을 받아 제작한 傑作品이다. 또한 고대 목조조각의 기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문명대 『해인사 목조희랑조사진영(초상조각)상의 고찰』한국미술사학회 1978
이재창 장경호 장충식 『해인사』 대원사 1992
강우방 곽동석 민병찬『불교 조각 2』 솔 2003
문명대 『삼매와 평담미』 예경 2003
김상현 『九世紀 후반의 海印寺와 新羅 王室의 후원』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