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이 다룬 - 한국 근대 초기시에서 ‘외래성’과 ‘민족성’의 문제-(신시논쟁) 비평
- 최초 등록일
- 2008.11.30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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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시논쟁에 대한 정우택의 의견을 메타비평한 것입니다. 자료가 얼마 있지 않아 고생하며 정직하게 출처를 밝혀 쓴 글인데, 틀림없이 도움이 되실 겁니다.
목차
1. 논문 요약
1) 문제의 제기
2) 신시논쟁의 쟁점
2. 논문 비평
1) ‘세계성’- 황석우의 한계
2) ‘서정성’- 용어의 혼란성
3) 논쟁 쟁점의 확대
본문내용
1. 논문 요약
Ⅰ. 문제의 제기
신시논쟁에 대한 평가는 황석우의 “ 서구지향적 데카당 취향”과 현철의 “문화론적 민족주의”가 충동한 결과 ‘민족시의 개념’과 ‘근대시의 정체성’의 문제가 부각된다는 점이다. 이 신시논쟁에서 상징주의가 비판받고 배제되는 과정과 그 이론적 근거들은 이후 한국 근대시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1920년대 초반 근대시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던 다양한 논점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신체시와 자유시, 민족성과 세계성, 상징주의에 대한 평가, 시의 장르적 본질로서 서정성, 문화적 민족주의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논점들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에 대한 근대시의 대응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통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신시 논쟁의 쟁점
1) 자유시와 신체시
현철은 당시 유행하는 신시는 신체시로서 자유시나 신체시가 동체이명(同體異名)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해 황석우는 근자의 시는 ‘신체시’가 아니라 ‘자유시’이며, 자유시는 ‘세계시형’이라고 주장했다.
황석우는 신체시 폐기론을 주장하며, 민요나 시조, 한시 등의 전통적인 형식을 바탕으로 하여 서양시를 모방하는 ‘신시’의 모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유시는 서양에서 발생한 서시형이지만, 근대적인 ‘세계시형’으로서 세계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현철은, 자유시는 서양시의 모방이며, 신시는 조선의 민족성과 전통을 바탕으로 구상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상에서 황석우가 ‘인류공통의 세계시형’으로서 자유시를 선언적으로 지향하고 있다면, 현철은 ‘국민의 민족성`을 바탕으로 한 신시 또는 신체시를 구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1. 기본자료
정우택, 「한국 근대 초기시에서 ‘외래성’과 ‘민족성’의 문제」, 한국시학연구 제 19호.
2. 단행본
박경수, 「한국 현대시의 정체성 탐구」, 국학자료원, 2000.
3. 학회지
조두섭, 「황석우의 상징주의시론과 아나키즘론의 연속성」,대구어문론총(제 14집).
김춘식, 「신시 혹은 조선시와 근대시의 정체성- 황석우와 현철 사이의 논쟁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연구 28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