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옥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8.11.24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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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경옥의 생애와 사상
목차
A. 들 어 가 기
1. 김철손이 만난 정경옥
2. 생 애
B. 배 경
1. 시대적 배경
2. 보수신학과 진보신학의 갈등
3. 민족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기독교의 존재양태
4. 민족의 전통 문화에 대한 기독교인의 대응
C. 정경옥의 신학
1. 정경옥 신학의 개방적 차원
1) 신학의 수용적 측면
2) 신학의 진보적 측면
3) 신학의 개방성
2. 정경옥 신학의 사회문화적 차원
1) 신학의 사회적 측면
① 도덕에 대한 관심
② 사회적 복음에 대한 관심
2) 신학의 문학적 측면
① 기독교의 절대성
② 기독교의 절대적 상대주의
3. 신학의 시대화와 향토화
* 이덕주 교수님 논문 편집
1) 고향으로 낙향
2) 이세종과의 만남
3) 뒷 이야기
D. 나가 는 글
본문내용
우선 문서운동 전반이 선교사의 손에서 한국인의 손으로 넘어왔다. ‘신학지남’, 신학세계가 그러했다. 이 시대에는 ‘신생’을 위시로 몇몇 개인 지들도 발간되었다. 선교 50주년을 맞이한 1935년에는 기념할 만한 3대 저서 류형기 ‘단권성경주석’, 박형룡 ‘기독교근대신학난제서평’, 정경옥 ‘기독교의 원리’가 나왔다. 1936, 37년에는 신약성경 개역과 구약성경 개역을 완성, 간행하였다. 실로 한국의 신학계는 하나의 정초기(定礎期)를 이루었다.
그러나 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1938년을 기해 신사참배 강요 문제를 계기로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 학교들이 폐교를 당하고 “기독신보”와 신학지들이 폐간을 당하였다. 1939년 정경옥의 저작인 ‘기독교 신학개론’은 1930년대 한국 신학의 정초기의 최후의 것과도 같았다.
2. 생 애
1930년대 한국 신학계에 “혜성과 같은 신학자”로 등장하였던 철마(鐵馬) 정경옥(鄭景玉)은 1903년 전남 진도군 진도면교동리 103번지에서 출생했다. 고향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경성고등보통학교(후의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고부하던 중 31운동에 가담하여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고향 친구 박종현 ․ 박석현 ․ 김인수 등과 함께 ‘보향단’(補鄕團)을 결성, <독립신문> 등 유인물을 제작하여 배포했다가 체포되어 목포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옥중에서 기독교인 수감자로부터 전도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석방된 후 진도로 돌아와 함께 개종한 ‘옥중 동지’들과 1920년 진도읍교회를 설립하였다. 이처럼 그의 개종과 초기 신앙 활동은 ‘민족주의’(nationalism)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후 정경옥은 ‘목회자’로 헌신할 결심으로 하고 서울로 올라 가 기독교청년회(YMCA) 학관에서 영어를 배우다가 일본에 유학, 도쿄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관동대지진(1923년 9월)이 일어나
참고 자료
“정경옥 신학 사상에 관한 연구” (2000년, 석사학위논문, 이헌규)
김철손 “정경옥과 성서연구”
“신학과 세계” (2005년 여름호) “초기 한국교회 토착신학과 영성”
“한국감리교회의 역사” 유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