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막부의 멸망
- 최초 등록일
- 2008.11.07
- 최종 저작일
- 2008.11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도쿠가와 막부 말기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막부의 멸망과정을 설명한다. 직접 스캔한 연표와 사진 등도 들어있음.
목차
1. 서론
2. 본문
(1) 개국의 시작 - 미일 화친조약
(2) 미일 수호통상조약
(3) 안세이의 대옥(安政の大獄)
(4) 사쿠라다 문 밖의 변(桜田門外の変)
(5) 공무합체(公武合体)
(6) 테라다야 사건(寺田屋事件)
(7) 나마무기 사건
(8) 사츠에이 전쟁(薩英戦争)
(9) 금문의 변(禁門の変)
(10) 제2차 조슈정벌
(11) 대정봉환(大政奉還)
(12) 보신 전쟁(戊辰戦争)
3. 결론
본문내용
2. 본문
(1) 개국의 시작 - 미일 화친조약
1853년, 미국 동인도 함대 사령관 페리가 이끄는 4척의 군함이 나타났다. 페리는 개국을 요구하는 미 대통령의 국서를 전하고 다음 해에 대답을 듣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당시 로쥬(老中)대표인 아베 마사히로(阿部正弘)는 이 사건을 에도 막부의 쇄국 체제를 뒤흔드는 대사건이라고 파악, 조정에 이를 보고하고 각 방면의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막부의 지도력을 크게 약화시켰으며 다이묘들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1854년, 페리가 약속대로 돌아와 미일 화친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따라 시모다(下田), 하코다테(函館)를 개항하였고, 미국 선박에 대한 물자 보급 및 해난 사고 시 구조를 약속하였으며 최혜국 대우를 약속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개국하게 되었다.
(2) 미일 수호통상조약
이전에 체결된 미일 화친 조약에 따라 1856년, 시모다에 미국총영사로 해리스가 부임하였다. 그는 본국으로부터 통상 조약을 체결하여 무역을 개시하라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이 무렵 막부 내부에서는 두 세력이 대립하고 있었다. 막부의 독자적인 정치를 주장하는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 파벌과 막부와 다이묘의 합의 정치를 주장하는 마츠다이라 요시나가(松平慶永),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 파벌이었다.
이이 나오스케 파벌은 13대 쇼군 이에사다(徳川家定) 사망 후 공석이 된 쇼군의 후보로 도쿠가와 요시토미(徳川家茂)를 지지하여 난키파(南,紀派), 마쓰다이라 파벌은 히토츠바시 요시노부(一橋慶喜)를 지지하여 히토츠바시파(一橋派)로 불렸다. 이 두 파벌의 대립은 결국 난키파가 승리하여 이이 나오스케가 다이로(大老)에 취임하고 요시토미가 14대 쇼군이 되었다.
이이 나오스케는 미국 총영사 해리스와의 교섭에서 칙허(천황의 허락)를 얻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해리스의 위협 섞인 교섭에 밀려 1858년에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참고 자료
마리우스 B.젠슨 著, 김우영 外 3인 譯, 『현대일본을 찾아서』, 이산, 2006
야마모토 히로후미 著, 이재석 譯, 『교양인을 위한 일본사』, 청어람미디어, 2002
<참고미디어>
「아츠히메」(篤姫), NHK 대하드라마 (2008)
위키피디아 인물검색 - http://ja.wikipedia.org (日)
무사의 시대 - http://homepage1.nifty.com/SEISYO/ (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