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의 지방 자치
- 최초 등록일
- 2008.11.05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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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의 지방 자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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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러나 중앙권력과 대립할 가능성이 있는 정치적 사안언급은 회피하였는데, 이는 중앙권력에 협력함으로써 자신의 지방에서 권력을 확고히 하고 경제적 이익 유지, 확대하고자하는 철저한 매개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다음 회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대체로 3월 중 10일 전후 기간 동안 개최되었다. 필자는 지면사정상 도당국이 제시한 자문안과 지시사항의 내용과 함께 도의회원이 도당국에 제출한 결의안을 분석하기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결의안 내용은 주로 공약과 차이 없이 철저하게 지방의 이익 관철이라는 입장에서 제시된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근대적인 기간설비와 인재양성이라는 측면에서의 교육의 확대가 그 핵심적인 요소로 주장되었다. 또한,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도협의회 의결기관화를 요구한 것은 유권자인 면협의회원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지방자치는 본래의 모습으로 전개되지 못하고 왜곡된 형태를 조선사회에 각인시켰으나, 근대적 선거제도나 회의 방식의 도입 등으로 근대적인 지방자치 제도가 조선에 이식되었다. 이는 당신의 조선사회에 근대적인 의미의 지방자치의 싹을 틔우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고 하면서 필자는 글을 마무리한다.
* 이 논문을 읽으면서, 일본은 우리의 자치문화를 부정하고, 불완전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도입된 자치제도로써 조선사회의 근대적 의미의 지방자치가 이뤄질 수 있었다고 보았고, 또한, 필자 역시 마지막 부분에서 그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적으로 자치문화를 지니고 있었는데, 조선시대 유향소, 향청, 향회로 이어지는 지방자치 문화가 그것이다. 물론 양반인 지배계층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근대적인 것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19세기 향회시기로 오면서 평민에서 양반으로 신분 상승한 이들에게 장악되고, 더 나아가 민란의 시점에서 평민들이 향회에 참여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19세기 말,
참고 자료
박찬승, 특집1 : 지방자치제, 그 오욕의 역사와 한국민중 일제하 ‘지방자치제도’의 실상, 역사비평사, 역사비평 통권 15호, 1991. 5.
김동명,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의 지방 자치 -충청남도 도(평의)회의 정치적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