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말여초(羅末麗初) 시대의 불상의 변화와 그 의미
- 최초 등록일
- 2008.10.28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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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양식과 신라말 고려초기, 고려시대의 불상양식과
그 변화의 면모까지 아울러 살펴본 레포트.
목차를 참조해주세요.
목차
1.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의 불상양식(佛像樣式)
2. 나말 여초 및 고려시대의 불상 양식과 변화의 이유
*참고자료*
본문내용
1.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의 불상양식(佛像樣式)
통일 신라 시대의 불상 조각은 삼국 시대의 양식을 소화하고 그 동안 축적된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이 전래된 당의 양식을 흡수하면서 원숙한 조각 기술과 깊은 신앙심으로 신라 조각 미술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삼국 통일로 인한 국력의 충실과 정치적 안정은 신라 사람들로 하여금 우수한 불상을 조성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고 정신적인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신라 전역에 광대한 사원이 많이 건립되고 수많은 불상이 조성되었다. 삼국 시대부터 있었던 石造, 金銅, 磨崖佛은 물론 새로이 鐵造의 불상을...그러나 이러한 것은 신라 말기에선 중앙에서의 권력 투쟁과 호족 세력의 성장 등으로 미약해진 왕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표현이기도 했다. 통일 신라 시대의 불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육계는 작아지고 나발이 많아진다.
(2) 미소가 사라지고 근엄한 모습이 된다.
(3) 목에 3도가...
2. 나말 여초 및 고려시대의 불상 양식과 변화의 이유.
나말 여초 시기인 8세기 후반부터는 인체 묘사에 착실함이 없어지고 비례의 불균형을 가져와 위축된 조형이 되었고 의문은 음각으로 표시하여 평면적이고 도식적인 것이 되어 퇴화의 길을 걷게 된다. 또, 석불과 마애불의 규모는 점점 커지지만 조각 역량이 규모를 뒷받침해 주지 못한다. 또 삼국 시대에는 미륵 반가사유상이 많이 조성된 것과는 달리 통일신라 시대와 나말여초 시대에는 비로자나불상과 아미타여래상이 많이 조성된다. 그 이유는 불교 사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조성의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성의 기법이 퇴화하는 것은 불상 숭배에 철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선종 전래의 영향도 있어서 전반적으로는...이러한 나말 여초 및 고려시기 불상의 특징을 긍정적인 면으로 살펴보면 선종의 영향에 의한 고려 불상의 퇴화 현상이라기 보다는 불교에 의한 선종 양식의 조상례를 남긴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고려의 건국을 佛力에 두고 있는 새로운 왕조 체제하에서 더욱더 활기찬 문화 활동을 영위한 것도 사실이다. 반도의 중심부가 새로운 문화의 터전이 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불교 조각은 다시금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때로는 귀족 왕상의 취향에 영합하여, 또는 민중의 호응에 힘입어..
참고 자료
홍윤식 ,한국의 불교 미술. 대원정사 1988.
장충식 ,한국의 불상. 현대불교신서, 1982.
김원룡 ,한국 미술 문화의 이해. 예경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