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현실적 외교개혁가 광해군에 대한 고찰이 글에서는 임진왜란 속에 부왕인 선조를 대신해 분조를 이끌고 중국의 명청교체기에 왕위에 올라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탁월한 안목으로 조선을 무사히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폐모살제, 민생파탄, 오랑캐와 화친했다는 죄목으로 仁祖反正에 의해 왕위에서 축출되고 이후에도 ‘폭군’, ’패륜아‘라는 악명을 벗어버리지 못했던 光海君에 대해 즉위 과정에서의 대북세력 관계, 왜란 이후, 대북방 정책을 중심으로 올바른 평가를 하고자 하였다.
목차
Ⅰ.머리말Ⅱ. 광해군의 험난한 즉위 과정
1. 왜란 중의 세자 책봉, 부왕 선조와의 갈등
2. 영창대군의 출생, 明의 책봉 승인 거부
Ⅲ. 광해군대의 對北方 政策
1. 광해군의 대후금 정책
1-1. 정보수집과 보안의 노력
1-2. 羈縻策의 활용
1-3. 자강을 통한 방어대책
2. 조선에 대한 명의 파병 요구
2-1. 출병을 둘러싼 논의
2-2. 출병을 회피한 광해군의 의도
2-3. 심하전투의 패전
3. 심하전투 패전 이후의 대외관계
3-1. 명의 재징병 요구에 대한
광해군의 외교적 대응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朝鮮時代 역대 왕들 가운데 光海君 만큼 극과 극의 상반된 평가를 받는 제왕도 없다. 조선시대 내내 계비인 인목대비를 폐하고 동생을 죽인 廢母殺弟와 무리한 토목 공사등 실정을 자행한 폭군으로 매도되었는가 하면, 20세기 들어와서는 17세기 초반, 명청교체기의 어려운 국제적 상황에서 ‘중립외교’ 또는 ‘실리외교’를 펼쳐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도모했던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光海君 시대 즉, 17세기 전반은 동북아시아에서 많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정치사적으로만 보더라도 이 시기는 격변의 세기였다. 1616년 누르하치(奴兒哈赤)가 요동의 여진족들을 통합하여 後金을 세우면서부터, 기존 국제질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1619년 明과 후금 그리고 조선은 최초의 군사적 충돌을 경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명청교체기(明淸交替期) 속에서 현실적 안목으로 국제정세를 바라보고 중립외교를 펼쳤던 이가 바로 조선 15대 임금 光海君이다. 그러나 仁祖反正을 성사시킨 반란주체들은 光海君의 치적을 폄하하기 위해, 「선조실록」과 「光海君日記」의 사초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쿠데타를 합리화시켰다. 光海君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난 뒤 光海君 시대의 일기를 편찬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반정의 주체들, 西人들이었다. 이후 서인들의 집권이 이어지면서 光海君의 업적과 공적을 바로 잡을 기회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김민경, 「광해군대의 정치적 대립」,인제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4, p1.
광해군 시대를 정착해온 한명기에 따르면 광해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인조반정이 성공하고 서인의 집권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계속된 폄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였으며 광해군 시대의 실록인 「光海君日記」의 태백산본과 정족산본의 내용이 다른 것이 그 대표적 증가라 하였다. 왜란 발발 직후 왕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이 아버지인 선조를 대신해 벌인 눈부신 활약상 등 태백산 본에 보인 광해군에게 유리한 내용들이 정족산본에는 삭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실록이 수정․왜곡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였다.
이 글에서는 임진왜란 속에 부왕인 선조를 대신해 분조를 이끌고 중국의 명청교체기에 왕위에 올라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탁월한 안목으로 조선을 무사히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폐모살제, 민생파탄, 오랑캐와 화친했다는 죄목으로 仁祖反正에 의해 왕위에서 축출되고 이후에도 ‘폭군’, ’패륜아‘라는 악명을 벗어버리지 못했던 光海君에 대해 즉위 과정에서의 대북세력 관계, 왜란 이후, 대북방 정책을 중심으로 올바른 평가를 하고자 하였다.
Ⅱ. 光海君의 험난한 卽位 과정
1. 倭亂 중의 世子 冊封, 父王 宣祖와의 갈등
光海君의 선조의 서자로서 공빈 김씨 소생으로 1575년에 태어났다. 光海君은 애초에 왕이 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정비의 몸에서 난 적자도 아니고 長子도 아닌 次子였기 때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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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사회과학원, 여강 출판사.1993
․한명기, 『광해군 :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역사비평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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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 『조선 왕조에서 배우는 군주 리더쉽』, 거송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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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기, 「광해군대의 대북 세력과 정국의 동향」 [한국사론] 20,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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