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과 갑오농민운동(대원군과 전봉준)
- 최초 등록일
- 2008.10.06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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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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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청 일 전쟁의 배경
2. 청 일 전쟁의 진행과정
3. 동학농민운동의 배경과 전개과정
4. 전봉준과 흥선대원군
본문내용
3. 일본의 조선내정개혁안
무쓰 무네미츠(陸奧宗光, 1844-1897).
메이지 시대의 정치인이며 외교관으로 청일전쟁 당시에 외무대신을 지냈으며, 시모노세끼조약 때 전권을 행사했다
오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1832-1911)
조선 공사로 부임해서 기어코 전쟁에 불을 지를 인물로서는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일본군을 파병하게 되었을 때 무쓰가 조선 공사로 임명하여 보내게 된다. 조선 공사로 부임한 오오토리는 노인정 회담을 통해 청과 조선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 뻔한 조선의 내정개혁을 요구하여 청일전쟁의 빌미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배경 : 전주화약으로 의병차용의 필요성이 사라짐.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전쟁의 구도로 가야함.
내용
청일양국이 공동으로 동학란을 진압할 것.
동학란 진압후 조선의 내정개혁을 위해 양국에서 상임위원을 두어 재정, 관리임용, 치안문제 등을 조사하도록 하는 것.
청과의 합의결과에 상관없이, 군을 철수치 않으며, 청이 내정개혁을 거부한다면 단독으로 조선에 요구한다는 것.
결과 : 청국의 거부
변란이 진압된 이상, 청일 공동진압은 무의미한 것.
조선정부 자체로 처리해야할 일. 조선의 자주를 인정해 준 일본이 더욱 간섭할 권한이 없다.
천진조약에서 변란이 진압되면 즉시 철병해야한다는 규정.
일본은 전쟁을 결심.
도하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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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양 제국들의 상황
러시아
만주를 탐내고 있던 상황에서 청일 전쟁은 오히려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항여 국외중립을 견지하는 입장 고수.
미국
미국의 국무장관은 주미 일본 공사에게 “어떤 경우도 거중조정 이외의 다른 방법을 통해서는 사태해결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전함.
영국
한성을 제외한 나머지 도를 청일이 분할점령 일본의 거절
결국 상해지역의 영국 이익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보증만을 요청.
일본은 청일 개전에 대한 외교적 장애물은 없다는 판단을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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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본군 경복궁 점령
6월 8일 청군 아산만에 상륙.
6월 9일 일본군 인천에 상륙,
6월 10일 일본군 서울입성.
토리는 동학난 진압 의뢰를 조선정부로부터 받아. 동학을 진압한다는 대의명분 하에 조선에 장기주둔을 꾀할 속셈이었음.
6월 11일 전주화약.
7월 23일 경복궁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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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 일 전쟁의 진행과정
1894년 7월 25일, 풍도해전
7월 29일 성환전투
9월 15일, 평양성 전투
9월 17일, 황해해전(압록강전투)
10월 25일, 단둥전투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