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문학과 문학관
- 최초 등록일
- 2008.09.09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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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매월당 김시습. 그는 세종과의 일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유교적인 관념이 팽배하던 조선시대에 자유인으로 살아갔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세조의 왕위찬탈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금오신화>라는 작품을 남겼을 뿐 아니라, 단종에 대한 신하의 도리를 다해 생육신으로 남았던 인물이다. 또한 민본사상가로도 유명하다. 이 발제지는 그의 생애와 사상, 문학관을 통해서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나아가 천재작가, 김시습을 이해하고자 한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김시습의 생애
2. 김시습의 사상과 문학(금오신화)
3. 김시습의 문학관과 작품
본문내용
2. 김시습의 사상과 문학
김시습은 『금오신화』의 작자로 알려졌지만 뛰어난 시인인데다가 유불선에 대한 입장과 생각을 나타내는 글을 다수 남겨 조선 초기의 문학과 사상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문집으로는 『매월당집』이 있으며, 이 밖에 전기소설집인 『금오신화』가 있다. 그의 사상적인 실상은 대부분 문장을 통하여 밝혀져 있지만, 수많은 한시에서도 그의 생애와 사유세계를 찾아볼 수 있다.
김시습을 가리켜 이이는 ‘심유적불’이라 하였고, 이자는 ‘행유적불’이라고 하였다. 이는 그의 사상이 유교와 불교의 두 요소가 서로 뒤섞여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이를 두고 퇴계 이황은 “세상을 피하고 괴이한 짓을 하는 하나의 이인”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는 근본을 유교에 두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불교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는 산사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지만 불교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산림처사로 자처하였다. 다음의 글에서 그러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본디 불교·노장과 같은 이단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중들과 짝하게 된 것은 그들이 원래 물외인이요 산수도 물외경이라, 내가 물외에 놀고 싶어서 중들과 더불어 산수 사이를 노닐었습니다.
-「상유자한서」
유교적인 사유체계를 기초로 삼아 거기에 불교사상을 적용하여 이해하려는 태도는, 조선 초기 유교와 불교가 교체되는 과도기에 살았던 신흥지식인으로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당연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국문학계에서는 이처럼 불문에 의지한 것을 두고 가정과 벼슬, 그리고 돌아갈 고향을 갖지 못한 그가 생활의 방편으로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가 불문에 의지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불교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유가의 합리주의로 불교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자기 합리화의 논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에게서 사상의 괴리를 엿볼 수 있으니, 모순된 현실의 삶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 김시습의 인간적인 약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참고 자료
1. <김시습의 시문학 연구> 충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국문학 전공 김연세. 1994
2.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정병헌․이지영. 2006
3. <김시습의 시문학 연구> 김연수. 1994
4. <김시습 평전> 심경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