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사상(인성론과 정치사상)
- 최초 등록일
- 2008.08.18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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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맹자의 사상(인성론과 정치사상)에 관하여 정리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 인성론과 정치사상을 중심으로 맹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Ⅱ. 본론
1. 맹자(孟子)의 생애
- 맹자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2. 맹자(孟子)의 사상
1) 인성론(人性論)
2) 정치사상
3. 맹자와 루소의 비교
1) 루소의 사상
2) 맹자와 루소의 사상비교
Ⅲ. 결론
- 왕도를 통해 알 수 있는 민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 참고문헌 >
본문내용
Ⅱ. 본론
1. 맹자(孟子)의 생애
맹자의 생애에 관한 기록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기』[맹가순경열전]을 들 수 있다. 이는 맹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맹가순경열전]의 기록은 매우 간략하기 그지없다.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맹자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맹자순경열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맹가(孟軻)는 추(騶) 땅 사람이다. 학업을 자사(子思)의 문인에게서 받았다. 도를 통한 다음 천하유세에 나선 뒤 제선왕을 섬겼다. 제선왕은 그를 쓰지 못했으므로 양(梁) 나라로 갔다. 양혜왕도 맹자의 주장을 실행하지 않고 그의 주장은 우원(迂遠)하여 당시의 실정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중략)... 은퇴해서는 제자인 만장(萬章)등과 함께 『시경』과 『서경』을 차례에 따라 서술해 중니(仲尼)의 뜻을 계술(繼述)하고 『맹자』7편을 지었다.” 신동준 , 『맹자론』, p29
동양사상사에서 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맹자에 관한 기록치고는 소략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맹자의 가계(家系)와 생몰연대는 말할 것도 없고 당시 누구나 갖고 있던 자(字)에 대한 기록도 없다. 활동상황 또한 소략하기 그지없다. 맹자는 대략 공자 사후 약 1백여 년 뒤에 노나라 근처의 추읍(鄒邑)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름이 가(軻)인 것은 확실하나 자(字)는 현재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신동준, 『맹자론』 p31
청소년 시절 마음껏 학습하고 연수한 후 맹자는 말, 문장, 행위들로써 점차적으로 전국시기에 가장 영향이 있는 유가의 대표인물로 성장했다. 맹자는 자신의 학술사상이 형성된 다음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학식으로서 제후들에게 설복하였다. 기원전 312년에 맹자는 송나라에서 추나라로 돌아왔다. 맹자는 제후들에게 유설(遊說)하려고 제나라와 위(魏)나라, 송나라, 등나라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25년간을 돌아다녔지만 자신의 인정의 이상을 실현할 수가 없어서 스스로도 정치상에서 더는 아무런 전도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고향에 돌아갔다. 그 후로 다른 나라로 떠돌아다니지 않았으며 그곳에 머물러 글을 가르쳐주고 한편으로는 그의 제자들인 만장(萬章), 공손추와 같이 ‘맹자’를 저술하였다. 그 책에서 맹자는 생애의 일을 서술하였으며 또 자신의 사상 및 모든 학설을 논술하였다. 요명춘, 『맹자적 지혜』, p57
참고 자료
1) 김충열, 『유가윤리강의』, 예문서원, 1994
2) 신동준, 『맹자론』, 인간사랑, 2006.
3) 요명춘, 『맹자적 지혜』, 도서출판 조선 , 1992.
4) 최 명, 『춘추전국의 정치사상』, 박영사, 2004
5) 게오르크 홀름스텐, 『루소』, 한길사, 1997
6) 프랑수아 쥴리앙,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한울아카데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