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극 기원 정리
- 최초 등록일
- 2008.08.18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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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그동안 가면극에 대한 연구가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전개되어 많은 논문이 축적되었는데, 그 중 가면극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논쟁이 심한 주제 중의 하나였다. 그동안 가면극의 기원론(起源論)은 크게 산대희(山臺戱) 기원설, 산악(散樂) 백희(百戱) 기원설, 기악(伎樂) 기원설, 제의(祭儀) 기원설(무속 제의 기원설, 풍요제의 기원설), 실제적 목적 기원설 등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논의들을 자세히 고찰한 리포트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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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동안 가면극에 대한 연구가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전개되어 많은 논문이 축적되었는데, 그 중 가면극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논쟁이 심한 주제 중의 하나였다. 그동안 가면극의 기원론(起源論)은 크게 산대희(山臺戱) 기원설, 산악(散樂)․백희(百戱) 기원설, 기악(伎樂) 기원설, 제의(祭儀) 기원설(무속 제의 기원설, 풍요제의 기원설), 실제적 목적 기원설 등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논의들은 각각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첫째, 산대희 기원설이다. 산대희 기원설을 처음 제기한 학자는 안확(1932)이다. 그는 처용무, 나례, 산대희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즉, 나의(儺儀)가 신라시대에 처용무가 되고 고려시대에 내려와 산대희가 되었는데, 산대희가 바로 조선시대 산대도감극의 전신이라는 견해이다. 이어 김재철(1939)은 가면극이 고대의 제의에서 출발하여 신라의 연희와 고려의 산대잡극을 거쳐 조선의 산대도감극으로 발전하여 왔다는 견해를 밝혔다.
안확과 김재철의 주장은 송석하(1935)와 조원경(1955)에 의하여 비판을 받았다. 송석하(1935)는 나례가 가면극의 발생에 동기를 준 것은 인정하지만, 처용무와 나례가 다르고 나례와 산대극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례나 산대잡극은 나례의식에서 행해진 백희 전반을 총괄해서 부르는 명칭이고, 처용무는 그 가운데 한 가지이며, 산대희와 산대잡극은 고려 말에는 여러 가지 잡기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현대의 산대극은 연극 형태를 갖춘 연극 명칭으로 여기에 잡기는 전연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례 산대희와 가면극인 산대극은 다른 것임을 지적했다. 조원경(1955)은 나례에서 행했던 백희, 희학지사(戱謔之事), 교방가요는 산대극과 같은 가면무극(假面舞劇)이 아니며, 어느 나례에서도 가면무극을 행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음을 보아 나례와 가면무극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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