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반도 안보분석
- 최초 등록일
- 2008.08.12
- 최종 저작일
- 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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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6.25가 발발하기 전에 김일성은 남한 내에서 대남통일전선으로 대남혁명을 완수하기를 원했다. 당시 남한의 초대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데모대의 시위가 더욱 격렬해지고 이에 대응한 경찰의 반응이 폭력적인 진압에 이르자, 대통령직을 사임하겠으며 선거를 다시 치르겠다는 약속의 방송을 했다. 그러나 대남혁명은 간첩들의 애매모호한 대응으로 실패하게 된다. 그것을 미국과 소련이 확인한 후에, 소련은 강력하게 북한에게 군사적 동맹을 강요했다. 대남혁명의 실패에 따라서 김일성은 소련을 방문하게 되었고 엄청난 자금의 원조와 군사무기를 지원받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남한의 박헌영과 허가이도 모스크바를 방문했지만 별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소련은 스탈린을 중심으로 김일성의 소련 방문에 맞추어 한반도 조국해방통일전쟁을 승인하였다. 당시 소련은 남한과 사할린 동포 이민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결정에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대남혁명이 실패하면서 미국 백악관이 한반도의 평화보장에서 완전히 돌아섰고, 대남혁명에 크게 기여했던 소련 역시 대남혁명에 대해서 완전한 실패했다는 판단을 하면서부터 였다. 그러므로 소련은 북한에 대해서 대규모의 군사비와 무기를 지원하게 되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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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정일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소련에서 북소회담을 갖고 푸틴 정권 선에서 한반도통일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했다고 한다. 한반도는 현재 대남혁명의 와중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삼성을 중심으로 한 자체 경영혁신과 법률적 재판을 통한 1 차 대남혁명은 실패했다고 판정되었다. 제 2 의 이승만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2 차 대남혁명 역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 역시 대남혁명 세력들의 미묘한 대응에 기인한다고 추정된다. 소련은 이미 2 차례의 대남혁명에서 실패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며, 사할린 거주 한족들을 중심으로 이민문제에 압박을 가하면서 북한에게 북소 군사동맹을 강요하고 있다. 김정일은 푸틴 정권이 외교를 담당하는 총리이며, 그 전에 이미 소련을 방문해서 한반도통일에 대해서 논의를 했으므로 사할린 문제라든지 대남혁명의 실패에 대해서 거의 무감각한 수준에 골몰해 있다. 그는 자력으로 군사독립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미군은 1998년 이후 거의 10여 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서 걸프전, 이라크전, 이란전, 아프간전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도저히 화해할 수 없으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미군의 속사정을 봐도 미군은 직접적으로 본국인 미국으로 철수하는 시점이던 1990년 전후 이후로 본국철수는 물 건너간 상황이며, 2000년 이후에는 중동전에 직접적으로 참전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소식통들은 개성개발과 동시에 군산철수를 빌미로 북한에서 핵무기를 개발했으며, 그 숫자가 꽤 많고 언제어디서든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장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북경의 6자회담에서 1 차로 영변 핵시설을 폭파, 폐기하는 절차를 밟았지만, 현재도 북한에는 핵무기를 8개 내지 10개를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는 언제 어디서나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시설을 이미 갖추었다고 추정된다. 게다가 현재 북한군의 병력 수는 130만 명에 이르렀으며, 식량사정은 알려진 관련사실과는 달리 넉넉한 편이고 바닷가에서 물고기조차 잡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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