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제국의 모든것
- 최초 등록일
- 2008.06.21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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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진한제국에 대해서 행정 문화 역사
목차
제 1절 진의 통일과 황제 지배의 출현
<진의 통일정책과 법치>
<진승·오광의 농민반란>
제2절 한제국의 건설과 발전
<고조의 즉위와 군국제의 실시>
<한대의 행정제도>
<중앙집권체제의 완성>
제3절 한무제 시대의 빛과 그림자
<신재재정정책의 추진>
<실크로드의 개통과 서역도호의 설치>
본문내용
제 1절 진의 통일과 황제 지배의 출현
<황제의 탄생>
진(秦)나라의 천하 통일은 상앙(商鞅)의 개혁 정치의 결실이고, 법가(法家)의 정치 이론의 구현이다. 법가의 정치란, 독재 군주(君主) 밑에 중앙 집권의 체제를 확립하고, 중앙의 명령을 전국에 획일적으로 실시하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진왕(秦王)의 정치는 모두 이 정책에 따라서 진행되었다. 이와 동시에 부국강병책을 실시한 결과 전국 이후 진의 영토는 전 중국의 3분의 1에 달하였다. 이후 B.C 230년 한나라를 멸망 시킨것을 선두로 조(B.C 228) 위(B.C 225) 초(B.C 223) 연(B.C 222), 제(B.C 221)의 6국을 불과 10년만에 평정하고 통일을 달성하였다. 천하(天下)를 통일한 뒤에 진왕(秦王)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皇帝)」라고 일컫고, 스스로를 「시황제(始皇帝)」라고 부르고, 그 후손은 차례로 2세 황제, 3세 황제라고 부르게 하여, 왕(王)의 시호(諡號)를 폐지하고, 인민(人民)의 황제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고, 황제의 신성화(神聖化)를 도모하였다.
<진의 통일정책과 법치>
6국의 평정후 문제가 된것은 이 광대한 영토를 어떻게 다스릴까 하는것이었다. 중앙의 권력을 강화하고 지방의 호족(豪族) 세력을 약화시키는, 이른바 중앙 집권제를 실시하기 위하여, 일찍이 상앙(商鞅)은 군현(郡縣)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승상(丞相) 이사(李斯)의 건의를 들어 시황제는 군현(郡縣)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여, 천하(天下)를 36군(郡)으로 나누고, 군(郡)에는 태수(太守)․감(監)․위(尉)를 두어 행정․감찰․군사의 3권을 나누어 맡겨서,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集中)되는 것을 방지하였다. 군(郡) 밑에 다시 여러 현(縣)을 두고, 큰 현에는 현령(縣令)을, 작은 현에는 현장(縣長)을 두었는데, 그들은 모두 중앙에서 임명하여 파견된 관리였다.
군현제의 실시와 더불어 각종 통일정책이 시행되었다. 먼저 도량형을 통일했는데 전국시대에 각 국가마다 달랐던 도량형을 통일해 진량·진권이라 불리는 승이나 분동을 각지에 반포했다. 화폐도 각자의 포전이나 도전을 모두 페지하고 무게가 반량(약 8g)인 둥그런 원형 안에 사각형 구멍이 뚫린 형태의 반량전으로 통일했다. 그러나 최근 출토된 진의 반량전은 크기와 중량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그 출토지도 사천과 섬서를 중심으로한 옛 진의 영토에 한정되어 있다.
참고 자료
http://blog.naver.com/triology?Redirect=Log&logNo=90031406229(진나라 그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