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원상에 대한 글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8.06.15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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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전기 원상에 대한 연구를 훈구세력의 파악, 성종의 불교정책에 대한 것, 원상의 설치와 그 성격에 대한 글을 읽고 감상문을 쓴 것 입니다.
목차
훈구세력 파악의 한 사례연구-
원상가문의 구분
위 논문을 읽고…….
조선초기 원상의 설치와 그 성격
위 논문을 읽고…….
본문내용
위 논문은 계유정난을 통해 집권한 세조가 자신은 물론 그 후대 왕까지도 권력의 핵심부에 머무르게 되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훈구세력의 대표적 상징인 원상들 신숙주, 한명회, 구치관, 박원형, 홍윤성, 조석문, 김질, 김국광, 윤자운, 정인지, 정창손, 성봉조, 윤사흔 등 14명의 원상의 가계와 혼인관계를 다양한 사료를 참고하여 관직이나 특기사항을 잘 나타내며 설명하고 있다. 원상의 그 설치적 배경의 주목되는 사건은 이시애의 난으로 나타나 있다. 3개월이 넘게 지속된 그 난은 세조의 측근인 한명회·신숙주·김국광·등도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그들이 하옥되기도 하고 파장을 몰고 왔었다. 귀성군 이준과 남이 등이 1등 공신으로 진압하고 정계에서 급격히 부상하였는데 정치세력의 교체와도 같은 양상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러나 거의 동시 신숙주·한명회·구치관으로 구성된 의정부와 승정원의 기능을 합친 변칙적 기구인 원상제가 실시되어 핵심 중신들을 배제하려 했던 세조의 시도가 매우 무력한 것이었다. 왕권강화를 추구하던 세조는 그 측근들에 기대어 진행해 왔지만 점차 그 기구는 커져서 세력이 강화 되고 후일에는 3명이었던 원상이 9명으로 대폭 늘어나는 것이었다. 그 후 세조가 붕어하고 예종의 짧은 재임과 어린 성종의 재위로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이어지는 정치상황 속에 원상의 위상은 더 높아지게 된 것이었다.
또한 김범 교수의 연구는 원상가문 내부의 혼인관계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14명의 원상가문의 복잡하게 연결된 내부적 매개를 잘 보여주는 것은 혼인관계라고 김 범 교수는 언급하고 있다. 전근대 한국사에서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지만 현대에서도 이러한 가문끼리의 혼인은 심심찮게 언론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실정이다.
당대 조선시대에는 자신들의 뛰어난 활동을 통해 최고의 권력집단으로 확고히 입지를 굳힌 원상들이 이후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유력가문과의 결혼은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그리하여 한명회는 예종과 성종의 국구가 되는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고 박원형도 좌참찬 윤이손을 사위로 맞이하고 김질은 셋째아들 김성동을 좌찬성 강희맹의 딸과 결혼 시켰고 정인지도 맏아들 정현조를 부마로 만들었다. 구치관의 손자와 최항의 손자도 당시 영의정과 이조판서의 사위가 되었고 특히 정인지의 손자 정세호의 딸은 세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과 결혼하여 선조를 낳아 국왕을 배출하는 입지를 구축한 것이다. 이처럼 혼인관계를 형성한 원상가문은 지속적으로 가세를 유지한 가문(신숙주·박원형·최항·김질·김국광·정인지·성봉조·윤사흔)과 상당히 위축된 가문(한명회·구치관·홍윤성·조석문·윤자운·정창손)으로 나누어진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