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려의 토지분급제도인 전시과제도에 관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대적 토지지배와 녹읍체제
1. 토지사유화와 녹읍의 내용
2. 녹읍의 기원과 변천
Ⅲ. 전시과 체제의 성립
1. 사유지로서의 민전과 수조권
2. 녹읍과 역분전 -전시과 제정의 선행 과정 3. 전시과의 제정과 개편
4. 전시과의 운영과 성격
Ⅳ. 전시과체제의 붕괴와 과전법체제의 성립
1. 전시과체제의 붕괴
2. 과전법체제의 성립과 배경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전근대사회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土地制度이다. 당시의 기본산업은 農業이므로 토지가 기본적 생산수단이며, 富의 포괄적 기반이 된다. 따라서 토지의 소유 여부는 사회계급을 구분하는 지표가 되며, 토지소유를 둘러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사회의 기본 관계를 표현한다. 토지제도는 토지지배관계를 규정한 것으로, 이에 대한 이해는 전근대사회의 계급관계와 신분제를 규명하는 바탕이 된다.
拙稿에서는 전근대적 土地 分給制 중에서 高麗의 토지제도이었던 田柴科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筆者가 여러 시대 중 고려의 田柴科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고려가 시기 상 중간점이라는 것과 이를 통하여 전근대사회의 구체적인 생활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선택하게 되었다. 또한 비교적 사회경제사연구에 필요한 사료가 풍부하여 전시과제도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는 바 이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Ⅱ. 古代的 土地支配와 祿邑體制
1. 土地私有化와 祿邑의 內容
原始的 형태로나마 개인의 토지를 사유하기 시작한 것은 靑銅器 시대로 보고 있다. 그러다가 鐵器 시대에 들어와 토지 사유는 더욱 진전되었다. 鐵製 農器具의 제작과 상용으로 인한 농업생산력의 향상이 그 계기였다. 생산력의 발달이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으로서 토지에 대한 소유욕을 자극했던 것이다. 특히 4세기 이후 철기 제작기술의 발달과 함께 따비ㆍ괭이ㆍ쇠스랑ㆍ낫 등의 철제 농기구가 개량되어 널리 보급되고, 이에 따라 농업 생산력이 크게 높아지면서 개인의 토지 사유화는 아주 광범위하게 진전되었다. 6세기 이후 본격화된 牛耕 또한 이러한 변화와 발전에 일조하였다. 즉 우경으로 인해 深耕이 가능해지면서 地力 회복이 빨라지고 병충해도 예방되어 농업생산력이 한층 커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경은 밭갈이에 드는 노동력을 절감시키고 잡초 제거까지 용이하게 함으로써 토지 개간과 함께 토지 사유화를 촉진시키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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