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
- 최초 등록일
- 2008.06.02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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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동서원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원
2. 도동서원(道東書院)의 위치와 입지
3. 도동서원의 연혁
4 .도동서원의 건축학적 가치
5. 참고 자료 - 1991년 도동서원 보수계획서
본문내용
1. 서원
(1)서원의 발생 원인
▪ 관학(官學)의 부진
세종이후의 관학은 출세의 도구로 변질되었고, 향교 교관의 질이 크게 저하됨으로 인해 덕망있는 선비들은 관학 교육에 참여를 기피하게 되었다. 따라서 성균관 향교의 생도가 미달되었고, 남아있는 생도는 학문 보다는 벼슬에 관심이 있는 무능하고 부패한 이들 뿐이었다. 16세기 연산군 대에 이르러 성균관은 연회장소롤 사용 되었고, 학자들의 독서를 금하기 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관학은 극도로 퇴락했고, 공부할 곳을 찾던 이들 속에서 서원은 자연 스럽게 성장하였다.
▪ 사림(士林)의 성장
서원은 붕당(朋黨)의 후방 기지와 같은 역할을 하였는데, 사림이라는 재야 지식인들이 중앙정계로 진출한 것은 성종 때였다.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의 계열로 일찍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을 내세우며 정치 참여를 거부하던 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정계에 진출하였다. 이들은 성리학(性理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도덕과 의리를 숭상하며 학술과 언론을 바탕으로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비리와 부정에 젖어있던 훈구 세력과 대립하게되어 4번의 사화(士禍)를 유발하였다. 이에 사림은 서원이 명목상 교육시설이었기에 정치적 반대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서원을 통해 학문에 힘쓰며 자신들의 힘을 키워갔다.
(2)서원의 역할
▪ 공부하는 곳
서원은 선비들이 모여서 명현 또는 충절로 이름이 높은 위인들을 받들어 모시고, 그 덕망과 절의를 본받고 배움을 익히던 곳이다. 서원이란 명칭은 당나라 때 궁중에 설치되어 서적을 편찬하고 보관하던 집현전서원(集賢殿書院)에서 유래되었으며, 선현을 받들어 모시고 어울려 공부하던 본격적인 서원은 송대(宋代)에 보이기 시작한다.
중종 37년(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성리학을 소개한 안향(安珦)의 옛 집터 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며 선비의 자제들을 교육하였는데, 이것이 서원의 시초이고 이 서원이 바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참고 자료
▪『道東書院誌』 嶺南大學校出版部,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97
▪『道東書院 - 實測調査報告書』 文化公報部 文化財管理局, 1989
▪『朝鮮後期書院硏究』이수환 一潮閣,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