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작가론 -현실인식과 풍자정신
- 최초 등록일
- 2008.05.26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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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채만식 작가론 현실인식과 풍자정신
목차
Ⅰ.서론
1. 문제제기
2. 채만식의 생애
3. 연구사검토
Ⅱ.본론
1. 작품세계의 특징
1)풍자의 정신
- 부정적 세태를 풍자
-부정적 주인공을 풍자
-부정적 화자를 풍자
2)역사인식
3)여성이 겪는 불행한 운명
2.채만식 소설문체의 특징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2. 채만식의 생애
1902년 전북 옥구군 임파면 취산리에서 부친 채규섭씨와 모친 조우섭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편이었던 지주였으며 막내아들인 그를 특히 사랑하였다고 한다. 채만식은 집안에 독서당을 앉힐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부모임의 지극한 사랑과 관심속에서 어린시절부터 집에서 차린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하였다. 1918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22년 중앙고보를 졸업한 후 곧바로 일본 와세대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축구팀에서 활약하는 등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던 채만식은 급속히 기울어진 집안의 가세 때문에 1923년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하였다. 1920년 부모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 귀향하여 은씨와 조혼하였다. 부모님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결혼이기 때문에 불행한 결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불행한 결혼은 신식교육을 받은 채만식에게 더욱 심한 정신적 갈등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국 이혼까지 요구하였으나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본부인 은씨와 별거한 상태로 신식여성인 김시영씨와 임종 때 까지 살았지만, 정이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부인과의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도 채만식을 괴롭혔다.지금까지 어려움없이 살아온 그이지만 이때부터 빈궁의 문제로 죽을 때까지 곤란을 겪어야만 했다. 1925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기자생활을 한 뒤 1년후에 그만두고 실직하였다. 그후 1933년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1936년까지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사회현실에 대한 견문을 비교적 폭넓게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이때의 체험이 나중에 채만식 문학세계 속에서 시대와 현실에 대한 관심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1945년 4월 고향에 돌아왔다. 8·15해방이 되자 서울로 올라와 잠시 머물렀으며 1946년 이리시 고현에 내려와 있던 작은 형 준식의 집에 기거하다가, 폐결핵이 악화되어 비참한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에도 창작의욕은 대단하여 이때 많은 작품을 썼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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