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를 통해본 조선후기 회화의 방향 고찰 (퀄리티 보장!!)
- 최초 등록일
- 2008.05.24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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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저는.. 2008년 상반기에 졸업을 했고,
학부때 평점은 4.3이었습니다.
이는, 정식 중간/기말고사 뿐만 아니라..
수시로 내는 발제나 레포트 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뜻하지요..^^
실제로도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꼼꼼하게 모든 과제를 수행하였습니다.
4년동안 꽁꽁 숨겨놨다가, 하나씩 올리게 되었습니다..^^
믿고 구매하시길....
퀄리티 보장합니다~!
그럼 좋은 레포트 쓰시길..^ㅡ^)v
목차
Ⅰ. 머리말
Ⅱ. 김홍도의 생애와 화풍의 전개
Ⅲ. 실학사상과 조선후기 회화
Ⅳ. 김홍도의 회화적 성과와 영향
1) 회화적 성과
2) 회화적 영향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일반적으로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하면 서민적인 풍속화를 그린 조선시대의 화원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김홍도는 조선후기의 화원으로 여러 장르에 능했다. 그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풍속화(風俗畵), 도석인물(道釋人物), 화조화(花鳥畵), 영모화(翎毛畵), 초상화(肖像畵), 기록화(記錄畵)는 물론 사대부들만의 자존심이었던 사군자(四君子)와 그 외 불화(佛畵)와 판화(版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 걸쳐 우수한 작품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어진화사(御眞畵師)로 작업에 세 차례나 참여하는 등 조선 왕조의 문예부흥기라 일컬어지는 영정조 시대에 활약하였다. 또한 끊임없는 화업에 대한 열정으로 조선적이면서 독창성 있는 화풍을 건립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영정조 시대에 실학사상(實學思想)의 등장으로 인하여 서민들의 의식구조가 변화되고,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관념에서 현실로 눈높이를 낮추게 되면서, 조선의 자연과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하는 이념이 기초가 되었다. 특히 회화면에서는 우리의 것을 정형화 시키고 중국의 산수를 모사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의 화풍으로 표현한 진경산수화와 민중의 노동을 직접 회화의 소재로 포착하여 사회의식과 현실감정을 담아 관념적 표현을 탈피하려는 사실주의적 창작태도의 풍속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본 글에서는 단원 김홍도에 대한 평전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생애와 화풍의 전개, 조선후기 회화와 실학사상의 영향, 또 그의 회화적 성과와 영향에 대하여 알아보고 김홍도의 평전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의미와 성격에 대하여 서술하기로 하겠다.
Ⅱ. 김홍도의 생애와 화풍의 전개
김홍도는 영조 21년(1745)에 중인이었던 김석무(金錫武)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홍도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자는 함장(含章), 사능(士能)이고 호는 서호(西湖), 단원(檀園), 단로(檀老), 단옹(檀翁), 취화사(醉畵史), 첩취옹(輒醉翁), 고면거사(高眠居士), 농한(農漢), 농사옹(農社翁) 등이 있고, 단구(丹丘)라는 별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 오주석, <단원 김홍도>, 열화당, 1998
· 전은림,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논문, 2002
· 유미정, <조선후기 풍속화에 나타난 리얼리즘과 실학사상의 상관성 연구>, 수원대학교 석사논문,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