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강의 (제1장 2부: 대원군 정권)
- 최초 등록일
- 2008.05.05
- 최종 저작일
- 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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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근대사 강의에서 대원군 정권의 리포트.
목차
1-2장> 대원군 정권
1.대원군 정권의 수립.
2. 대원군의 내정개혁.
3. 쇄국양이정책.
4. 대원군정권의 몰락.
본문내용
【제2장 대원군 정권】
1. 1860년대 조선의 정세
조선 왕조는 15세기 말엽에 건국한 이후 국가 사회의 안전을 기하고 세종대왕 때의 한글 창제를 비롯하여 민족 문화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비록 임진왜란․병자호란 같은 두 차례의 큰 국난을 치르기도 하였으나, 전후 5백 년 동안 주권과 국토를 안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오면서 나라의 힘이 매우 쇠미해지기 시작한 바, 그 직접적인 최대의 원인은 왕조의 중엽부터 대두하기 시작한 세도정치가 차츰 패도의 권력 정치로 변질되고 심화되면서 그의 중압을 받아 일반 국민의 사기가 날로 저하되고 동요되기 때문이었다.
세도정치의 초기 형태는 동양 정치사상의 이른바 치세의 대도, 즉 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국왕이 어진 재상을 기용하여 온 국민을 위한 좋은 정치를 펴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어린 임금 순조가 즉위하게 된 이후로 헌종․철종에 이르는 동안 어리고 심약한 임금이 계속 즉위하게 되니, 그때마다 왕실의 외척들이 새삼스레 세도줄을 휘어잡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기에 앞서 자기와 자기 족속들의 권력과 부귀만을 탐내게 됨에 따라 나라의 기강은 더욱 흔들리게 되고, 민심은 갈수록 이탈하게 되니, 이를 가리켜 척족 세도라고 일컫게 되었다.
군주 정치의 왕권이 미약해지고 타성받이의 외척들이 왕실 주권을 농락하게 되자, 지방은 지방대로 도백 이하 군수․현감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아전이라는 토착관료와 향반이라는 낙향한 양반의 후예와 토호라는 지방 호족들이 저마다 서울의 척족 세도가와 줄을 대고, 그 대행자처럼 위세를 떨치며 일반 농민을 상대로 온갖 착취와 불의 부정한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이라, 만백성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날로 궁핍해지면서 막다른 골목의 불가피한 저항이 민요․민란이라는 형태로 폭발되고 확산되게 되었다.
참고 자료
한국근현대사연구회 편/ 한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