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과거제도
- 최초 등록일
- 2008.04.08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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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에 대한 문과, 무과, 잡과에 대한 ppt와 문과에 대한 발표자료입니다.
목차
과거제도의 꽃 “문과”
문과의 구분
“장원급제”
“슈퍼스타”이율곡”
“알성급제”
백패와 홍패
하층민의 등용문 ‘무과’
잡과(雜科)의 시초
고려시대의 잡과
조선시대의 잡과
조선시대 잡과의 변천사
잡과의 입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의 순서
본문내용
과거시험의 꽃, 문과〉 문과가 과거시험의 꽃으로 불리는 것은 국가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의정부, 육조, 승정원, 언관 기능을 하는 사헌부‧사간원‧홍문관 그리고 교육기관인 성균관 등 요직은 문과 출신자들만이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과는 태조 2년(1393)부터 과거가 폐지되는 고종 31년(1894)까지 총 804회가 시행돼 1만5,127명이 합격했다. 그런데 문과는 단순히 관직에 처음 진출할 사람을 선발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전 기간을 통한 문과 합격자의 성분을 보면 유학(幼學) 37%, 생원(진사) 36%, 원유계자(元有階者, 이미 관직이나 관품을 갖고 있는 자) 27%, 기타 0.3%로 전체의 27%가 전‧현직 관료나 관품 소유자들이었다. 이미 관직을 가진 사람들이 문과에 응시한 것은 승급은 물론 문과 출신만이 오를 수 있는 핵심관직으로 옮기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문과 시험은 정기 시험과 비정기 시험으로 구분되는데 3년마다 치러지는 식년시(式年試)는 식년에 해당하는 자(子)‧오(午)‧묘(卯)‧유(酉)년에 치러졌다. 그러므로 식년 전년 가을에 초시를 치룬 후, 식년 봄에 복시, 임금 앞에서 치르는 전시 등 3단계로 진행되었다. 합격자 정원은 초시 240명, 복시 33명이며, 전시는 복시를 통과한 33명 전원이 시험을 치렀는데 당락에 관계없이 최종 등위만 매긴다. 그러나 정기시험으로 발탁되는 사람만으로 모든 인재들을 발탁할 수 없으므로 비정기 시험이 자주 시행되었다. 비정기 시험은 증광시(增廣試)와 별시(別試)로 나뉘는데 증광시는 왕의 등극, 세자나 세손의 탄생 등 왕조의 경사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치룬 시험이며 별시는 학문 권장의 뜻에서 시행된 것으로 시험 시기나 합격 인원도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주로 서울 거주자들이 대상이었으며 시험절차도 간소해 대체로 1회의 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됐다. 조선 전 기간의 문과 합격자 명단에 의하면 식년시 합격자가 약 40%, 증광시 등 각종 별시 합격자가 60%였다.
참고 자료
없음
압축파일 내 파일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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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도.p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