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문화 운동과 5.4운동
- 최초 등록일
- 2008.03.27
- 최종 저작일
- 2006.07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중국 근현대사 신문화 운동과 5.4운동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신문화 운동과 5*4운동>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의 시작>
<신문화운동의 중심지 북경대학>
<신문화운동의 성과: 문학혁명(백화운동)>
<여성해방으로 이어진 신문화운동>
<5*4운동의 시작>
<5*4운동의 의의>
<신문화운동과 5*4운동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본문내용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의 시작>
신해혁명이 실패하고 원세개의 황제 부활운동이 진행되어 복고풍조가 전국을 휩쓸던 암울한 시기인 1915년 9월 15일 상해 진독수(陳獨秀, 1878~1943)의 [청년잡지(1916년 9월 제2권 제1호부터 <新靑年>으로 개명]는 신문화운동 발발의 신호탄이 되었다. 신문화운동의 주요 구호인 ‘민주’와 ‘과학’은 창간호 [청년잡지]의 “청년에게 고한다”에서 처음 나온 말이다. 이 글은 현재의 사회에는 <진부 노후>한 공기로 충만해 있으며 이대로는 중국이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이 병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자각해서 용감히 분투하는 청년”뿐이라고 하면서 “청년이여, 이 임무를 제군들은 떠맡겠는가” 라고 격렬한 어투로 묻고 있었다. 그리고 뒤 이어서 그를 위한 6개의 방침을 거침없는 필치로 하나씩 호소했다.
1. 자주적이어야 한다. 노예적이 아니어야 한다.
2. 진보적이어야 한다. 보수적이지 말아야 한다.
3. 진취적이어야 한다. 은둔적이지 말아야 한다.
4. 세계적이어야 한다. 쇄국적이지 말아야 한다.
5. 실리적이어야 한다. 허식적이지 말아야 한다.
6. 과학적이어야 한다. 공상적이지 말아야 한다.
결국 필자인 진독수는 중국 사회의 보수성*퇴영성을 날카롭게 규탄한 다음, 자주적*진보적인 <청년>의 출현에 의해서 미래를 이룩하도록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그는 “유교야 말로 중국 2000년 전제정치의 정신적 지주이며 암흑을 낳는 근원이다”라고 유교사상과 공자를 비판했으며 근대 서구문화 학습을 통해 민주주의와 과학주의를 제창했다. 그는 강력하게 민주정치를 선전하고 봉건적 군주전제를 반대 하였으며 민주국가를 세울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신문화 계몽주의자들은 과학과 민주를 같이 논하고 과학과 민주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고 여겼다. [신청년]은 민주와 과학 사상을 고양하며 청년세대를 자각시키고 진리추구를 위하여 앞장섰다. [신청년]은 민주와 과학을 제창하여 많은 청년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으나 봉건세력에게는 아주 큰 공포와 원한을 초래했다. 봉건 보수파들은 앞을 다투어 사방에서 비난 하였다. 그들은 [신청년]을 상식에서 벗어난 사설(邪設)과 괴물로 여겼다. 그들은 [신청년]이 유교를 파괴하고 예법을 파괴하며 국수(國粹)를 파괴하였으며 신문화운동은 중국문명의 토대를 동요시킨다고 비난하였다. 그
참고 자료
중국을 정복하자, 김소중 지음, 백산서당, 2002
중국사서설, 이춘식 지음, 교보문고, 2005
중국현대사, 좌백유일외 1인 지음, 한길사, 1980
중국현대문화운동사. 부장록 지음, 중국학@센터,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