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백석 시 「고향」
- 최초 등록일
- 2008.03.15
- 최종 저작일
- 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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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석은 우리의 현대 시사에서 한동안 매몰되어 있다가 뒤늦게 조명을 받아 그 우수성이 입증된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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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30년대는 일제가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면서 식민지 수탈을 더욱 강화한 어두웠던 시기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문학이 두드러진 활기를 띠고 활짝 꽃핀 시기이기도 하다. 30년대에 생산된 작품의 양은 20년대의 세 배를 훨씬 웃돌고 40년대의 두 배가 넘으며 심지어 50년대보다도 더 많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시의 경우만 보아도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김영랑, 박용철, 오장환, 이육사, 유치환, 이용악, 서정주,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설정식, 임화, 윤동주, 김상용 등 빛나는 별들이 이리저리 무리지어 모더니즘 계열, 순수서정 계열, 민족의식 계열 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구인회, 시문학파, 카프 등등의 이름으로 성좌를 이루며 30년대 문학의 천체도를 이루고 있다.
지금부터 논의해 보고자 하는 백석도 위에서 언급한 별들 중의 하나다. 백석은 우리의 현대 시사에서 한동안 매몰되어 있다가 뒤늦게 조명을 받아 그 우수성이 입증된 시인이다. 백석시의 대체적인 연보가 조사되고 백석 시의 전체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최근에는 백석에 대한 연구가 다른 어떤 시인들에 대한 연구 못지않을 정도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백석이 한동안 연구해서는 안 될 작가로 매몰 되었던 이유는 임화나 이용악의 경우와는 다르다. 임화나 이용악의 경우는 정치적인 입장과 실천이 우리 쪽과 다르다는 이유였지만 백석은 단지 고향이 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월남할 이유가 없었기에 해방과 분단의 시기에 우연히도 자신의 고향인 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북쪽에 속한 시인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에 두고 그러면 지금부터 백석의 출생과 연보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백석의 시 「고향」에 대해 비평해 보도록 하겠다.
백석(白石, 본명 : 백기행 1912~1996)은 1935년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장하여 1936년 정월에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고 이후 1941년 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구체적인 작가의 연보는 아래와 같다.
참고 자료
고종석, <샛별 같은 모국어에 실린 조국현실> 중에서
최두석, <백석의 시세계와 창작방법> 증에서
양승준, 양순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 중에서
홍성암, <한국 현대 비평가 연구>, 태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