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사]머리 모양의 변천사
- 최초 등록일
- 2008.02.28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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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머리모양은 신체를 장식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얼굴의 형태나 유행(fashion)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양이 변화한다.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모양이 있었는데, 고금을 통하여 남자보다 여자가 더욱 복잡하고 장식방법도 다양하다.
한국인은 의관을 갖추는 것이 예로 되어 있고 의관을 갖추기 전에 머리부터 가다듬었다. 수발(修髮)은 의복이나 장신구보다도 더 먼저 행하여졌으며, 기본적인 신체보호 기능 외에 주술적이며 심미적인 기능을 지닌 인간의 종합적 표현 수단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에 의해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부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始也)」라는 관념으로 오랫동안 장발이 고수되어 왔다. 수발양식에는 존두사상(尊頭思想)이 담겨 있어 머리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곧 효라고 생각하였다. 수발을 통하여 인간의 미의식을 표현하였고, 수발양식만 보아도 그 사람의 지위, 계급, 신분, 혼인의 유무 등이 구별되는 사회적 질서의 한 방법이다.
그러한 머리 스타일의 변천을 크게 선사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현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목차
1.시작하며
-시대별 머리모양 변천사
2.선사시대
3.삼국시대
4.고려시대
5.조선시대
6.개화기와 일제강점기
7.현대
8.마치며
본문내용
1. 시작하며
머리모양은 신체를 장식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얼굴의 형태나 유행(fashion)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양이 변화한다.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모양이 있었는데, 고금을 통하여 남자보다 여자가 더욱 복잡하고 장식방법도 다양하다.
한국인은 의관을 갖추는 것이 예로 되어 있고 의관을 갖추기 전에 머리부터 가다듬었다. 수발(修髮)은 의복이나 장신구보다도 더 먼저 행하여졌으며, 기본적인 신체보호 기능 외에 주술적이며 심미적인 기능을 지닌 인간의 종합적 표현 수단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에 의해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부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始也)」라는 관념으로 오랫동안 장발이 고수되어 왔다. 수발양식에는 존두사상(尊頭思想)이 담겨 있어 머리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곧 효라고 생각하였다. 수발을 통하여 인간의 미의식을 표현하였고, 수발양식만 보아도 그 사람의 지위, 계급, 신분, 혼인의 유무 등이 구별되는 사회적 질서의 한 방법이다.
그러한 머리 스타일의 변천을 크게 선사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현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2. 선사시대
환웅(桓雄)천왕 거발환(居發桓;B.C.3898)은 부자와 군신, 남녀의 구분을 명확히 하였으며 음식․의복․주거의 편의와 제도를 만들고 머리를 땋게 하였다.
제2세 단국부루(檀君扶樓)는 계묘 3年(B.C.2238)에 조서(詔書)를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땋아서 목을 덮도록 하고 푸른 옷을 입게 하였다.
《문헌비고》에 "단군 원년부터 머리를 땋고 머리를 덮는 것을 가르쳤다."고 하였으며, 《사기》에는 "위만이 추계만이복(結蠻夷服)을 하고서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만은 우리 나라 사람처럼 보이고자 추계로 빗고 만이복을 입은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