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운하] 신동아가 10년 추적 끝에 최초 공개하는 이명박 운하의 전모
- 최초 등록일
- 2008.02.20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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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동아가 10년 추적 끝에 최초 공개하는‘이명박 운하’의 전모
목차
● 삼성그룹, 1995년 경부운하 검토
● 이명박 측근, “1996년 YS 견제로 무산”
● 충주댐, 충주호, 국립공원 통과 안 해
● 괴산 박달산-문경 조령산 쌍방향 터널 뚫는다
● 임시 갱도공법으로 4년내 완공
● 서울-부산 40시간, 고속 바지선의 비밀
● 구포대교 등 17개 재가설, 달천교 등 13개 철거
● 대구 갈산동·화원읍, 선착장·물류단지 유력
● 총생산 파급효과 연 1조4229억원
● ‘타당성 없다’ 정부 보고서 자문교수들 “연구 참여한 적 없다”
● 환경단체 “백두대간 두 동강…생태계 교란 불 보듯”
본문내용
〈제1부〉 정치 입김에 좌초된 경부운하
이명박 경부운하 노선도
사라진 내륙의 물길을 우리의 기억에서 되살려낸 주인공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이 전 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이 마무리되어가던 지난해 초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내륙운하, 즉 경부운하에 대한 계획을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 사이에 우뚝 솟아 한강과 낙동강을 가로막고 있는 조령 인근 지역에 수로 터널을 뚫어 서울과 부산을 운하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낙동강 상류의 부족한 수량은 충주호에서 받거나 보를 만들어 확보하고, 높아진 하상은 준설해 수심을 확보한다는 안(案)이다. 공사비의 상당 부분은 준설을 통해 얻은 골재를 팔아 충당한다는 것.
이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그가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1996년 7월, 15대 국회 본회의에서 제안한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그 한 해 전인 1995년 세종대 부설 세종연구원이 내놓은 내륙주운(舟運) 건설론을 원용하는 수준이었다. 이 전 시장은 시장 퇴임 1년 전부터 대선을 향한 정책적 승부수를 띄운 셈. 하지만 이 전 시장의 주장은 크게 이슈화하지 않았고, 그 자신도 운하 자체가 정치적 이슈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난 5월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후 청계천 복원에 대한 칭찬 여론이 빗발치자 이 전 시장은 자신의 대통령선거 제1 공약을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내륙운하 건설로 확정했다. 8월17일부터는 3박4일간 한강과 낙동강을 따라가는 정책탐사를 벌이며 지역민과 언론을 대상으로 내륙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청계천의 성공(환경단체들은 ‘일부의 성공’ 또는 ‘실패’로 보지만)’은 그에게 10여 년 전 국회의원직 상실과 함께 묻힌 ‘운하의 꿈’을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을 불어넣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