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역사전쟁, 영산강 장고형 무덤
- 최초 등록일
- 2008.02.10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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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일역사전쟁, 영산강 장고형 무덤
목차
(1) 전방후원분이란 무엇이며 한반도에서의 출현에 따른 일본의 반응
(2) 영산강 장고형 무덤의 등장
(3) 우리나라의 장고형 고분
(4) 일본식 무덤의 기원은 한반도의 주구묘 일까?
(5) 한반도 장고형 고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본문내용
전방후원분이란 우리나라에서 발견되고 있는 장고형 무덤을 뜻한다. 전방후원분은 일본 고대사의 핵심으로서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인 야마토정권의 성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야마토정권의 성립과 지배 영역 확대의 지표라고 하는 것이 일본 학계의 정설이다. 이러한 대형 전방후원분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국가권력이 존재해야하고 그 실체가 야마토정권이라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방후원분과 유사한 장고형 무덤이 등장하자 일본의 언론들은 모두 열광하였고 관심 또한 폭발적이었다. 이렇듯 만약 장고형 무덤이 전방후원분이라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서의 핵심은 바로 장고형 무덤의 주인이 일본이며, 어느 한 시기, 일본이 한반도의 일부 지역을 지배했거나 영향력 아래 두었다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2) 영산강 장고형 무덤의 등장
한일역사전쟁과 관련한 여러 논쟁거리 중에 하나가 영산강 유역의 장고형 무덤이다. 1972년 7월 19일, 당시 고려대 박물관 주임으로 근무하고 있던 윤세영이 ‘한국 속의 전방후원분’이란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기고문을 실었다. 당시 경희대학교 교수였던 황용훈 등과 충남 부여 규암면 합송리의 오목산, 구봉면 구룡리의 와우산 등 평야지대에 있는 구릉 네 곳을 공동 조사한 결과였다. 이후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일본보다 축조시기가 200년이나 늦은 이 한반도 남부의 전방후원분 논쟁은 한일 고고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그렇다면 이 일본식 무덤이 어떻게 한반도에서 나와 논란을 일으켰으며 또 무덤의 주인공은 누구일지 고민이 안 될 수가 없다.
이러한 윤세영 등의 주장으로 고고학계에서는 긴급히 문화재위원회가 열리게 되었다. 장고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장고형 무덤은 일본 용어로는 전방후원분으로, 뒤에는 둥근 봉토분이, 앞에는 네모난 제단형태가 마련되어 있는 모습이다. 3세기 중엽~6세기 후반에 걸친 일본 고대국가 형성기에 조성된 독특한 형태의 이러한 무덤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왕이나 지역의 유력자인 수장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 전역에 2,000기가 넘게 분포하게 있다.
참고 자료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이덕일・이희근 지음, 김영사.
<<한일역사전쟁, 영산강 장고형 무덤>> 역사스페셜, KBS1TV.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조유전・이기환 지음, 황금부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