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회화와 도자기
- 최초 등록일
- 2008.01.29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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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회화와 도자기 시간상으로 간략정리한 내용입니다.
목차
1.회화
1.조선 전기(1390~1550)
2. 조선 중기(1550~1700)
3. 조선 후기(1700~1850)
4. 조선 말기(1850~1910)
본문내용
1.회화
일반적으로 한 국가나 민족의 창의력과 사상, 외부와의 문화교섭 등 제반 문화 현상을 가장 직접적, 구체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은 문학, 미술, 음악 등의 예술이지만, 가장 오래도록 남아 전해져서 여러 가지 문화 현상을 일목요연하게 폭넓게 보여주는 것은 미술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정치이념 아래 그 전의 시대들과는 다른 성격의 미술이 발전하였다.
조각, 공예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발전했지만,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시대의 변천에 따를 변화의 양상을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회화와 도자기이다. 즉 조선 미술은 회화와 백자를 비롯한 도자기로 대표되며, 회화는 순수미술, 백자는 생활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미술사상 회화가 가장 발전하였던 때는 조선시대이다. 이 시대에는 조직화된 도화서를 중심으로 다수의 유능한 화원들이 배출되었고, 이들과 아울러 상당수의 사대부 화가들이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시대의 회화는 고려시대보다도 더욱 다양해졌고, 한국적 화풍현상을 더욱 뚜렷하게 이룩하였다.
또한 대나무, 산수, 인물, 화초 등 다양한 소재들이 다루어졌으나 감상을 위한 산수가 대종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초상화는 동양의 삼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1.조선 전기(1390~1550)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축적된 명적들이 전해지고, 명, 청과의 활발한 문화적 교섭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앞 시대의 회화전통을 계승하고 중국의 화풍을 수용 발전시킴으로써 새로운 한국적 화풍이 형성되었다.
조선시대 전기의 회화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15세기이다. 이 시기에 이미 안견과 강희안을 비롯한 화가들이 배출되어 한국적 화풍을 형성하고 후대의 회화발전을 위한 토대를 굳건히 하였다.
이시기의 대표적 화가인 안견은 안평대군에 의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화원이었던 그는 여러 대가들의 장점들을 취하여 절충함으로써 대성한 것으로 기록들에 전해진다. 화원이었던 그는 여러 대가들의 장점들을 취하여 절충함으로써 대성한 것으로 기록들에 전해지는데, 이점은 그의 ‘몽유도원도’나 ‘사시팔영도’를 보면 그가 곽희 일파 화풍을 토대로 하고 그 밖의 화풍을 흡수하여 조화시켜서 자신의 화풍을 형성하고 일가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안견과 동시대인이면서 안견과는 신분이나 화풍에서 대조를 이룬 화가가 바로 강희안이었는데, 그는 동생 강희맹과 함께 대표적인 사대부 명문가의 출신으로 화풍에 있어서도 안견과는 달리 당시로서는 최신의 화풍인 명대 절파화풍을 주로 구사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