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아시아의 외환위기-08년1월 작성
- 최초 등록일
- 2008.01.23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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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IMF사태 등...아시아의 경제위기가 오게된 배경에 대해 사례를 조사한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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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97년 7월 2일 "투기자금의 공격으로부터 태국 바트화의 가치가 달러 당 30바트 수준까지 폭락했다"는 짧은 기사가 `긴급(urgent)` 이라는 문패를 달고 방콕에서 세계곳곳으로 타전됐다. 아시아 경제를 쓰러뜨리고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준 아시아의 통화위기는 이렇게 막이 올랐다. 바트화의 환율이 1997년 4월, 달러당 24바트에서 26바트로 올랐을 때만 해도 태, 밖에서는 대부분 무관심하였다. 7년 7개월만의 바트화의 가치하락에 이어 곧 두 달 후 1달러당 27바트대가 무너지자 태국의 재무장관이 사임했다. 1997년 7월 2일 "더 이상 고정환율제를 유지하지 않겠다"라는 태국의 중앙은행의 발표와 함께 바트화의 매각태풍이 불면서 이날 하루 바트화의 가치는 달러당 30바트 수준으로 폭락했다. 1997년 초부터 시작된 핫머니(Hot Money 단기투기성자금)의 공세 앞에 그 동안 기적적인 성장을 해 왔던 아시아의 국가들이 무릎을 꿇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바트화가 폭락하자 보름만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이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환율이 흔들리자 이 지역에 투자되어었던 달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고 동남아시아 국가의 환율은 더욱 폭락세를 거듭하였다. 1997년 7월까지만 해도 1달러당 2,430루피아였던 인도네시아의 환율은 6개월 뒤인 1998년 1월에는 9,630루피아로 4배 이상 폭락하였고, 태국의 바트화도 같은 기간 동안 52바트 수준으로 2배나 평가절하되었다. 말레이시아의 화폐도 폭락하였으며, 1997년 10월에는 홍콩 증시로 번졌고, 11월에는 한국의 원화까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펀더벤탈(경제의 기본요소)이 튼튼하다`는 한국과 홍콩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제전문가들은 아시아의 외환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아시아경제를 덮고 있던 `버블` (자산가격인플레이션에 따른 거품경제)을 꼽고 있다. 태국의 경우, 1995년 말 외채가 국내총생산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이 돈은 생산시설에 효율적으로 투자되기보다는 부동산과 증권에 투자 되었으며, 경제수준에 맞지 않는 사치품의 수요가 급증하였다. 제조업경쟁력이 무너지고 무역적자가 누적되면서 성장은 정체되였다. 더욱이 아시아의 국가들은 정부주도의 성장전략을 선택하여 시장원리에 따라 경제가 운용되지 않았으며 정경유착, 자분배분의 불투명성, 뇌물관행 등이 경제효율성을 저해하여 왔었다. 국제적인 헤지펀드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환투기를 했으며, 급기야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은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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