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백제는 도읍을 3번이나 옮기었으며, 곧 한성-웅진-사비이다. 백제의 웅진 천도는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의하여 수도 한성이 함락하고 개로왕이 죽임을 당한 뒤 어쩔 수 없이 행해진 것이다. 즉 백제 내부의 사회적 발전에 따르는 스스로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강요된 것이었다. 반면, 사비로의 천도는 백제가 꾸준히 준비한 끝에 백제인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옮긴 것이다. 따라서 각각의 수도의 변화에 따라 한성, 웅진, 사비시대에 백제는 서로서로 다른 개성과 그에 따른 지배 세력인 귀족 세력의 변화 등의 다양한 특징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백제의 귀족세력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인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목차
I. 서론
II. 본론
1. 웅진 시대
(1) 웅진 시대 초기
(2) 신진 지배세력의 등장
(3) 동성왕의 한계
(4) 무령왕대
2. 사비 시대
(1) 관산성 전투에서의 패배
(2) 대성팔족
III. 결론
본문내용
I. 서론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그 중에서도 한국사는 귀족의 세력과 왕권과의 대립이 매우 중요시된다. 삼국 시대에는 왕권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족들의 세력도 그와 대등하게 성장해 있었다. 그 예로 잘 보여주는 것이 귀족들 간의 합의제인데 고구려의 제가 회의, 백제의 정사암 회의, 신라의 화백 회의가 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중 백제는 도읍을 3번이나 옮기었으며, 곧 한성-웅진-사비이다. 백제의 웅진 천도는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의하여 수도 한성이 함락하고 개로왕이 죽임을 당한 뒤 어쩔 수 없이 행해진 것이다. 즉 백제 내부의 사회적 발전에 따르는 스스로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강요된 것이었다. 반면, 사비로의 천도는 백제가 꾸준히 준비한 끝에 백제인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옮긴 것이다. 따라서 각각의 수도의 변화에 따라 한성, 웅진, 사비시대에 백제는 서로서로 다른 개성과 그에 따른 지배 세력인 귀족 세력의 변화 등의 다양한 특징이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백제의 귀족세력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인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II. 본론
1. 웅진 시대
백제가 한강 유역을 상실함으로 해서 한성시대의 귀족들은 자신의 세력 기반을 상실하게 되고, 이것은 곧 그 세력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가 있다. 웅진시대의 세력집단은 크게 둘로 구별된다. 하나는 천도와 함께 한성에서부터 왕실과 더불어 남내해 온 세력이요, 다른 하나는 웅진지역에 토착기반을 가진 신진 지방세력이다.
이러한 경향은 일반적으로 말하면 수긍이 가지만,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성시대의 대표적 귀족인 해씨나 진씨의 세력이 그 후에도 멸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또한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 웅진 시대 초기
웅친초기에는 해씨․진씨․목씨 등 남래귀족들이 정치의 실권을 잡고 있었다.
◈ 해구를 배하여 병관좌평을 삼았다 (삼국사기 26 문주왕 2년 8월)
◈ 병관좌평 해구가 권력을 함부로 하고, 법을 어지럽히고, 임금을 없이할 마음이 있었으나,
참고 자료
노중국, 백제정치사연구, 일조각, 1988
이기백, 웅진시대 백제의 귀족세력, 백제연구 특집호 pp.33~44,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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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백제의 웅진천도와 지배세력의 변화, 공주사범대학, 1989
이재운, 백제지배세력의 변천, 백제연구 15집 pp.325~342,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