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중세 임노동의 발생 요약 및 실록 관련사료 보충
- 최초 등록일
- 2008.01.04
- 최종 저작일
- 2008.01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4,300원
소개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중세 파트 중 `임노동의 발생`을 요약하고 실록에서 관련사료 보충하라는 레포트입니다
목차
1) 농민층의 분화
(1) 부역제의 한계
(2) 노동력 수요의 증대
(3) 노동예비군의 형성
2) 임노동자의 출현
(1) 유민의 증대와 대책
(2) 고용관계의 수립
3) 임노동의 양상
(1) 임노동의 종류
(2) 임노동의 조건
본문내용
(1) 임노동의 종류
조선후기의 임노동 양상은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매우 다양하였고, 비교적 보편화되었다. 업종별로 보면 임노동은 농업·광업·수공업·어업·임업·상업·건설·토목·운송·경비·잡역 등 각종 부문에 걸쳐있었고, 그것은 생산부문 뿐 아니라 비생산부문에서도 행해지고 있었다. 임노동자들은 관부의 작업장에서도 일했고, 민간의 사역도 담당하였다.
임노동은 우선 관부의 작업장에서 그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었는데, 궁궐수리 같은 작업장에서는 17세기 초부터 임노동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임진왜란의 전후 복구사업의 하나이기도 했다. 이때 품값을 주고 役軍을 모집하게 되었으니, 募軍이 그들이었다.
兵曹啓曰: “宮闕營造都監以來初六日, 掃除瓦礫、剪伐草木應役軍, 二百餘名定送事, 捧甘結矣。 欲給價布募軍則閭里之間應募者稀少, 絶無赴役之人, 極爲難處
병조가 아뢰기를, “궁궐 영조 도감(宮闕營造都監)이 ‘오는 6일에 기와 조각과 돌멩이를 청소하고 초목을 베는데 필요한 역군(役軍) 2백여 명을 정하여 보내라.’는 감결(甘結)을 보내왔습니다. 가포(價布)를 주어 역군을 모집하려고 한다면 민간에서 응모할 자가 드물어 전혀 부역(赴役)할 사람이 없을 것이니 매우 난처합니다.「선조실록 201권, 39년(1606년 7월 2일)」
山陵役이나 성곽수축에서도 점차 임노동이 행해졌다.
命書傳敎曰: …… 莫重陵寢神閣不建之前, 於坐於行豈敢正殿正門? 重建擇日, 其令禮曹, 卽爲從近擧行。 仰體儉德, 木物勿爲卜定, 以京儲取用, 石材可以琢磨者琢磨, 皆用舊石。 運木用軍門車子, 役軍用募軍, 切勿用民
전교를 쓰라고 명하였는데, 이르기를,
“……막중한 능침(陵寢)의 신각(神閣)을 짓기 전에는 어찌 감히 정전(正殿)에 앉아 있으며, 정문(正門)으로 다니겠는가? 중건(重建)하는 날을 가리되, 예조로 하여금 즉시 가까운 시일 내로 거행하게 하라. 역군(役軍)은 모군(募軍)을 써서 결코 백성을 부리지 말라” 「영조실록 87권, 32년(1756년 4월 26일)」
참고 자료
국편 `한국사`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