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스탈린주의 정당성을 확립시킨 소련 영화 - 소련 영화에 드러난 스탈린 우상‘만들기’-
- 최초 등록일
- 2008.01.01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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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페이지 수는 작지만 교수님의 극찬이 있었던 리포트입니다.
1930년대 소련에서 제작된 영화에 나타난 스탈린의 자기우상화를 통해서 시민들의 망딸리떼를 형성하여 러시아민족주의를 만드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가격이 비싼것은 그 만큼 저의 혼이 담겨 있으며,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목차
1. 머리말.
2. 경직화된 사회분위기 속의 영화.
3.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지위로 하락된 레닌.
4. 스탈린과 역사적 영웅과의 연계.
5. 맺음말.
본문내용
1917년 10월 혁명 직후 소련의 상황은 모든 면에서 극히 열악한 상태였다. 혁명이 성공하였지만 볼셰비키 정부는 국가 전역을 장악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이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무엇보다도 인민들을 혁명의 대의에 동참하도록 만들어야 했고, 그들이 제일 먼저 생각한 수단들은 신문, 팜플렛, 강연, 대중연설, 문학작품, 포스터, 연극, 라디오 등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들은 인력과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광대한 영토 전반에 보급하기에 역부족이었으며, 수많은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모두를 위한 문자 매체를 준비하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또한 아직도 인민 대다수가 문맹이라는 점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다.
이에 비해 영화는 라디오는 ‘혁명의 대의를 전달할 최상의 수단’으로 여겨져 사용될 만큼 당시에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당시의 방송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영화는 비록 많이 유실되었으나 그 중 많은 것들이 남아 있어서 다른 분야에 비해 연구 여건이 매우 유리하다. 주경철, <1920-1930년대 소련 영화와 프로파간다>,《서양사연구》,제29집, 한국서양사연구회, 2002, p.133.
한번 찍으면 복사를 통해서 전국으로 손쉽게 보급할 수 있었고, 필요한 시설은 영화 상영실과 영사기만으로도 충분하였다. 특히, 무성영화는 언어가 다른 여러 민족 사람들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결정적인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혁명이전에 활동했던 대부분의 영화인들이 필름과 카메라를 가지고 백군 지역이나 해외로 탈출함으로써 영화산업의 국유화는 볼셰비키의 의도와는 다르게 별다를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또한 내전기의 볼셰비키 정부는 영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뿐 그에 상응한 물적 ․ 제도적인 지원을 해주지 못하였다.
참고 자료
마르크 페로, 주경철 역,《역사와 영화》, 까치, 1999
정태수,《러시아-소비에트 영화사1》, 하제, 2001
존 M. 톰슨, 김남섭 역,《20세기 러시아 현대사》, 사회평론,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