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청계천
- 최초 등록일
- 2007.12.25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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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계천 복원 후의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에 관해 쓴 리포트입니다.
목차
1. 청계천의 역사와 청계천 복원
(1) 청계천의 역사와 청계천의 복원
(2) 조사의 의의와 초점
2. 청계천 복원의 긍정적인 효과
(1) 서울의 새로운 관광명소 창출
(2) 소음감소 및 대기환경 개선
1) 소음 감소
2) 대기환경 개선
3. 청계천 복원의 아쉬운 점과 결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청계천의 역사와 청계천 복원
(1) 청계천의 역사와 청계천의 복원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 청계천은 자연상태의 하천이었다. 청계천은 하상이 낮았기 때문에 건조한 봄·가을에는 대부분 말라있는 건천(乾川)이었던 반면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 우기에는 조금만 비가와도 물이 넘쳐 홍수가 날 정도로 건기, 우기에 따라 유량의 변화가 심하였다. 따라서 청계천은 조선 초기 태종 집권(1406)부터 영조 집권(1733)까지 많은 공사가 이루어졌다.
청계천이 지금의 청계천이라 불리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500년 동안 불리어 오던 개천이라는 이름 대신에 청계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청계천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때는 정확하지 않지만, 1914년 일제에 의하여 조선의 하천명칭들이 정리될 때 개정된 것으로 추측된다.
일제 강점기 이후 청계천 자체는 약 10여년 동안 방치되었다. 일본은 청계천을 이름 값 못하는 탁계천(濁溪川, 더러운 물이 흐르는 시내)`이라고 비웃었다. 지난 500년 동안 서울사람들의 생활과 함께 흘러온 청계천은 하루아침에 더러운 하수구로 전락하여, 청산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1920년대 이후 일제는 청계천 복개계획을 발표하였다.
1945년 해방을 즈음하여 청계천에는 토사와 쓰레기가 하천 바닥을 뒤덮고 있었으며, 천변을 따라 어지럽게 늘어선 판자집들과 거기에서 쏟아지는 오수로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1950년대 중반 청계천은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나라의 가난하고 불결한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슬럼지역이었으며,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상황 속에서 청계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유일한 방법, 그것은 `복개(覆蓋)`였다.
청계천이 복개 이후 약 40년이 지난 오늘날 청계천은 도심산업의 중심지로서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에는 하루에도 수십만 대의 차량들이 지나 다닌다. 그러나 더 이상 청계천을 서울의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서울의 이미지를 해치는 주범으로 지적 받고 있으며, 청계고가도로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근대화·산업화의 상징이 아니라 개발시대의 무지가 낳은 흉물로 인식되고 있다.
참고 자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기상청산하 국립 기상연구소>
<서울특별시 환경국>, 월별대기현황 2002~2006년 자료
윤성복,「소외, 청계천 복원 그리고 지속가능한 도시 서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