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서거정의 대표적 한시작품 소개및 분석한 리포트
목차
1. 그의 생애
2. 주요 작품 감상
3. 김시습과의 인연
본문내용
1. 그의 생애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자 강중(剛中), 호 사가정(四佳亭), 시호 문충(文忠))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순탄한 영달의 일생을 살았다. 당시 대구에서 명문가에서 태어나 6살에 이미 글을 지었고, 8살 때 외조부 권근 앞에서 시를 지어 칭찬을 받았다. 10살에 부친을 여의었고, 19살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했다. 20살에는 권람 한명회 등과 함께 유방선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25살에는 식년 문과에 성임, 강희맹의 다음으로 급제하고 사제감 직장이 되어 집현전 박사에 뽑혔다.
28살에 부수찬이 되고,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집현전에서 성삼문, 박팽년, 이개, 유성원, 그리고 강희안, 강희맹 형제와 교류했다. 32살에 부교리로 승진하여 한양 근교에서 사가독서 하였다. 33살에 명나라에 사은사로 가는 수양대군을 수행하던 중, 꿈으로 모친의 별세를 짐작하니 수양대군이 그의 지극한 효성을 칭찬하였다. 34살에 그는 모친의 복중이었는데,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씁쓸한 심정을 시로 표현하였다.
36살에 집현전 응교로 제수되고, 37살에 사육신의 죽음으로 집현전이 혁파되자 성균관 사예로 옮겼다. 왕이 그의 학문이 순정하고 재행(才行)이 우수하다며 세자를 보필하게 하였다. 38살에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사간원 우사간이 되었다. 39살에는 문신정시에 장원으로 뽑히어 공조참의에 올랐다. 40살에 예조참의가 되어 《오행총괄(五行總括)》을 지었다.
41살에는 명나라에 사은사로 갔으며, 기순(祁順)에게서 <북정록서(北征錄序)>를 받았다. 42살에 《명황계감(明皇誡監)》을 번역하였고, 권람, 한명회, 신숙주, 양성지, 김뉴, 임원준 등과 교류하였다. 44살에 대사헌(大司憲)이 되어 차자(箚子)제도를 도입했으며, 45살에 양관 대제학(大提學)이 되어 이후 23년간 문형(文衡)을 맡았다. 47살에는 발영시 장원으로 뽑혔고,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 참여했다. 그리고 경주에서 찾아온 김시습과 시로 교류했다. 51살에는 좌찬성에 오르고, 이듬해 좌리공신 3등으로 달성군에 봉해졌으며 평안도 관찰사로 나갔다.
참고 자료
이종건, 《서거정 시문학연구》, 개문사, 1985
정종대, <서거정의 시와 관인의식>, 《국어교육 97》, 한국국어교육연구회,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