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중국 명조의 학술과 문화의 전반적인 부분을 다룸
목차
1. 머리말
2. 명 전기의 학문(學問)과 사상(思想)
3. 양명학(陽明學)
4. 경세학(經世學)
5. 명대의 종교(宗敎)
6. 속(俗)의 문화
7. 맺음말
본문내용
명(明)은 1368년 태조(太祖) 주원장을 시작으로 성립하여 1644년 이자성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3세기 가까이 존립하였던 한족 정통왕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학술과 문화는 이전의 왕조가 몽골족에 의한 원(元)으로써 100여년 이상 중국 대륙을 지배하였으며, 원의 멸망 이후 60여 년간 혼란기가 계속되었다는 정치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명대 16세기 이후 이갑제가 해체되고, 향촌(鄕村)에는 향신지주와 훈척 등 세습적 특권지주가 나타나는가 하면, 상공업의 발전으로 부의 축적이 이루어졌던 사회의 흐름과도 연계하여 생각해볼 수 있겠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원대의 지배에서 벗어나 복고ㆍ국수주의적 경향을 띄었던 명 전기의 학문(學問)과 사상(思想), 명대의 대표적 사상 양명학(陽明學), 사회의 변화와 함께 맞물려서 주목을 받은 경세학, 역시 명 중기 이후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던 명대의 종교(宗敎), 『수호전(水滸傳)』,『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으로 대표되는 속(俗)의 문화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명 전기의 학문(學問)과 사상(思想)
명 태조(太祖) 홍무제(洪武帝)는 오랜 몽골의 지배하에서 변질된 당(唐)ㆍ송(宋) 문화로 환원하려는 복고주의적(復古主義的) 정책을 취하였다. 명초의 문화정책은 중국 전통문화의 재생과 부흥이라고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문화계의 창의력이 결여되었다. 뿐만 아니라 태조의 황제권 강화에 있어 군주전제(君主專制) 체제를 합리화하는데 주자학이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는 주자학(朱子學)을 국가 통치의 기본으로 수용하였으므로 주자학은 체제이데올로기로서 확고한 지반을 굳히게 되었다. 태조의 육유(六喩) 선포는 주자학의 교육지침을 따른 것이며, 태조의 주변에서 정치에 참여한 인물들 유기(劉基), 송렴(宋濂), 방효유(方孝孺) 등은 모두 철저한 주자학 신봉자들이었다. 이리하여 명 초에는 남경에 국자학 설치하여 유학을 필수로 교육하고 과거시험에서도 주자학을 과거의 시험과목으로 채택하였기 때문에 주자학은 확고한 관학의 위치를 독점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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