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세사, 제도사- 북위 균전제
- 최초 등록일
- 2007.11.04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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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를 다루는 강의에서 호한체제의 융합이라는 주제로 쓴 발표문의 일부, 북위 균전제에 관한 내용입니다.
강좌중국사의 내용을 토대로 북위 균전제에 대해서 정리하였습니다.
북위에서 왜 균전제가 시행되었는지, 균전제가 어떠한 의도와 여건에서 형성되고 현실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보는 1) 북위 균전제의 성립 부분과,
균전제가 역대 토지제도사상 갖는 독특한 위치인 토지공유주의와 균분주의라는 두 관점에서 살펴본 2) 토지공유주의와 호한체제 부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구수전이 균전제의 전초가 되었던 것이라는 분석의 3) 계구수전에서 균전제로 라는 부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북위의 균전제에 대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많은 도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균전제(均田制)
1. 북위 균전제의 성립
2. 토지공유주의와 호한체제
3. 계구수전에서 균전제로
본문내용
균전제(均田制)는 A. D. 485년 북위왕조에서 시작되어 8세기 중엽 양세법(兩稅法)의 반포와 함께 붕괴된, 국가에 의한 토지관리제도(土地管理制度)로서, 규정상 국가권력에 의해 농민 개인에게 경지(耕地)가 균등하게 분배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환수(還收)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국가에 의한 토지관리, 균등분배, 환수가 일원적으로 체계화되었으며,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강구되어 정도의 진폭은 있었지만 300년 가까이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북위~수당의 균전제는 다른 어떤 시대의 토지제도보다도 그 역사적 성격과 의미가 강조되었다.
1) 북위 균전제의 성립
균전제가 구체화되는데 현실적으로 제도화 될 수 있는 특수한 조건, 즉 균전제가 처음 시행된 북위왕조가 갖는 고유한 특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탁발족이 5호 16국의 혼란으로 극도로 피폐해지고 기존의 사회구조가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 북중국에서, 유목민족의 한 부족이 다양한 민족들을 통합하여 국가권력을 확립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균전제가 어떠한 의도와 여건에서 형성되고 현실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유목민족으로서 한족을 지배하는 정복왕조라는 측면이다. 이는 균전 이념의 전통에 한정하여 단순히 유목적 토지공유사상이 어떠한 단계에서 발현되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유목민족인 탁발족이 농경민족인 한족을 정복 ․ 지배하고 농경화하는 과정에서 취해진 구체적인 정책의 발전으로 균전제가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대체로 사민정책(徙民政策)과 계구수전(計口受田)이 균전제의 선구로 인식되고 있다.
사민정책과 그에 동반하여 취해진 계구수전은 궁극적으로 탁발족이 미숙한 농업생산하에 농경화되면서 중원의 호족사회에 대응하여 황제권의 기초를 확보하고 국도를 충실히 하려는
참고 자료
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 편,『강좌중국사Ⅱ』, 지식산업사, 1989.
책 중에서
박한제, 「호한체제의 전개와 그 구조」논문과
김유철, 「균전제와 균전체제」논문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