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프랑스의 문화 정책과 문화 전반적 사항
- 최초 등록일
- 2007.11.03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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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엄청나게 공을 들인 레포트입니다.
원주제는 17세기 프랑스의 문화정책에 대한 것인데
정책 뿐 아니라 왕의 사상과 태도가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을 다루어서
결과적으로 프랑스 문화 전반적 사항을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17세기 프랑스인의 지성
⑴ 전반적 사항
⑵ 보수주의 속의 데카르트와 자유사상가들
2. 17세기 프랑스의 종교
⑴ 루이 14세와 신교도 박해
⑵ 카톨릭의 부흥
⑶ 장세니즘과 교회 독립파
⑷ 박해의 결과 - 카톨릭의 침체
3. 17세기 프랑스의 발레와 음악
4. 17세기 프랑스의 문학
⑴ 바로크 문학
⑵ 프레시오지테와 뷔를레스크
⑶ 고전주의 문학
5.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주의 건축
⑴ 궁전 건축
⑵ 베르사유 궁전
6. 왕립학회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앙리 4세의 낭트칙령으로 종교적 평정이 이루어진 후 내란으로 초래된 도덕적 혼란과 물질적 파괴를 복원하기 위한 재건 활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루이 13세(재임 1610-43) 하의 리슐리외, 루이 14세(재임 1643-1715) 때의 마자랭과 콜베르와 같은 탁월한 재상의 활약으로 프랑스는 국가의 권위, 국민의 신뢰, 경제의 재건 등을 되찾았다. 특히 성인이 된 태양왕 루이 14세가 친정을 시작하면서(1661) 한 세기 이상 절대군주제가 자리 잡게 되었다. 절대적인 국왕의 권력 하에, 17세기의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며 당대 문화의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Ⅱ. 본론
1. 17세기 프랑스인의 지성
⑴ 전반적 사항
17세기는 왕의 세기이자 영광과 질서정연한 사고와 감수성을 향한 의지의 세기이다. 이 세기는 외형상의 통일 하에 모순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으며, 흔히 볼 수 있는 정태적인 모습이 아니라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며 다양한 힘들이 교차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함 안에 앞 세기에서 이어져 온 몇몇 근본적인 경향이 흐르고 있었다.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개인의 혼동 속에서 선택과 분석에 도움을 주는 인문주의가 그것이다.
인문주의는 교육과 문화 환경에 작용했다. 인쇄술의 도입으로 당시까지 라틴어만 사용하던 영역, 즉 철학, 신학, 과학에서조차 프랑스어를 사용하여 서적과 사상의 보급이 빨라져 지식의 보급의 가속화 되었다. 전문가들에게만이 아니라 대중에게 사상을 전달하기 위하여 프랑스어는 더욱 명확하고 예리하게 되어갔다. 프랑스어로 된 최초의 철학책 『방법서설』을 쓴 데카르트와 파스칼은 프랑스어를 다듬고 확산시킨 장본인이었다. 또한 이즈음에 프랑스어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외교어가 되었고 또한 국제적 사상어가 되었다.
특히 라틴 문명과 헬레니즘에 대한 새로운 취향(라신, 페르농)과 더불어 고대 문명이 17세기 문화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지적이고 감각적인 호기심은 다른 경향들을 향하여 열려 있기도 하였다.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의 상호 여행과 체류에 의하여 르네상스 이래로 이탈리아는 커다란 명성을 유지하였다.
참고 자료
『프랑스 문화』 - 김미연, 박찬인, 이용주, 김영모 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두산 대백과사전
『새로 쓴 서양사 총론1』- 차하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