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명(聖德大王神鐘銘)을 통해서 본 신라(新羅) 중대(中代)말의 정치 변동
- 최초 등록일
- 2007.09.13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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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덕대왕신종의 명문을 통해 신라 중대시기 정치사를 분석해 본 소논문
목차
Ⅰ. 머리말
Ⅱ. 김옹(金邕)과 김양상(金良相)
1. 김옹과 김양상의 정치적 위치
2. 김옹과 김양상의 정치적 성격 - 왕당파인가 반왕당파인가
Ⅲ. 신라 중대말기의 정치상황
Ⅳ. 맺음말
본문내용
국립경주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현존 최대의 동종인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다. ‘에밀레종’이라는 별칭이 더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깊고 긴 여운을 가진 종소리가 유명하며, 모든 면에서 신라시대의 범종을 대표하고 있다. 신라시대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보통 미술사적 의의가 강조되곤 하지만, 실제 이 종이 가진 의의는 비단 그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성덕왕(聖德王)의 공덕을 기리고 중대왕실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종의 주조가 계획된 것은 경덕왕(景德王)때였으나, 계속된 주조 실패를 겪다가 혜공왕(惠恭王) 7년인 771년에 가서야 완성되었다. 이 종이 가지는 또 다른 의의는 바로 종이 조성된 경덕왕과 혜공왕시기, 즉 중대 말기의 시대적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 중대왕실은 전후시기에 비해 왕권이 매우 강화되었던 시기로 평가되어, 이를 두고 ‘전제왕권(專制王權)’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중대의 정치적 상황은 무척 역동적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종이 주조되던 경덕왕․혜공왕대는 엄청난 정치적 변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성덕대왕신종명은 그러한 정치적 변혁기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료로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본고에서는 성덕대왕신종명에 등장하는 주조 책임자인 김옹(金邕)과 김양상(金良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신종 조성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김옹과 김양상의 관직명 등을 통해 그들의 정치적 위치에 대해 살펴보고, 이들의 정치적 입장은 어떠했는지, 즉 이들은 왕당파인가 반왕당파인가에 대한 논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을 둘러싼 신라 말기의 정치 상황 을 살펴보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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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http://gsm.nri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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