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 최초 등록일
- 2007.09.11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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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흥선대원군 관련하여 전공레포트 입니다.
전반적인 대원군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목차
1.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시대사항
2. 대원군의 대내정치
3. 대원군의 대외정책
4. 대원군의 하야
본문내용
1.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시대사항
대원군의 집권기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시기였다.
이 시기에 중국과 일본은 서양세력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열게 되었으며, 우리나라의 해안지역에서는 이양선이 출몰되기 시작하면서 정세는 급박해졌다. 대외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대내적으로도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나라의 힘이 쇠약해지기 시작하였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은 왕조의 중엽부터 시작된 세도정치가 차츰 폐도의 권력정치로 변질되고 심화 된 것에 원인이 있다. 19세기 초 어린 임금 순조가 즉위하게 된 이후 헌종 ․ 철종에 이르는 동안 어리고 심약한 임금이 즉위하기 시작하면서 외척들이 정권을 휘어잡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기는 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찾기에 급급했다. 왕의 권력이 미약하니 백성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에는 세도정치가 국정을 농단하고 전횡하면서,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제도는 문벌과 당색, 관직의 매매행위로 좌우되었다. 그리고 그간의 재정이나 산업, 경제도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었다. 국가정치의 기본 목적은 보국안민인 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조 말엽 세도정치에는 이것을 망각하고 일가족의 사리사욕을 앞세우고 부귀를 탐내니 날이 갈수록 삼정은 문란해지고 있었다.
삼정의 문란을 백성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였다. 국가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토호나 아전, 지방의 양반들까지 농민을 한 없이 수탈하였다. 이에 농민들은 참지 못하고 민란을 일으켰는데, 가장 대표적인 민란이 진주민란이다. 진주민란은 병사 백낙신이 지나친 탐욕과 박해 때문에 일어났다. 민란의 주모자는 양반인 이계열을 우두머리로 내세워 민란을 일으키고자 통문을 돌리고 선동하였다. 이를 계기로 삼남지방으로 민란이 널리 퍼져 걷잡을 수 없었다. 이에 당황한 조정에서는 주모자를 처벌하고 탐관오리와 삼정의 문란의 시정책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민심은 계속 불안한 상태였으며 여러 지역의 민란은 다시 발생하였다. 1862년은 실로 ‘민란의 해’ 나 다름없었으며 이를 임술민란이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그러다 국왕 철종이 승하하고 김씨의 세도가 물러나며 국정 전반의 변통이 발생하자 지방의 농민투쟁도 점차 수구러들게 되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대원군이 집권을 하였고 조정의 변화에 농민들도 기대를 걸게 되었으며, 강력한 왕권으로 통치한 대원군은 어느 정도의 안정을 되찾아 주었다.
참고 자료
박강희, 1988,『조선근대사』 사회과학원역사연구소
한국근현대사학회, 1997,『한국근대사강의』 한울출판사
이선근, 2000,『대원군의 시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연갑수, 2001,『대원군집권기 부국강병정책 연구』서울대학교 출판부
김태웅, 2003,『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6 근대』솔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