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동북아 국제대전, 임진왜란
- 최초 등록일
- 2007.09.05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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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사회와문화란 주제에 대한 리포트
목차
Ⅰ. 임진왜란 이전의 동북아 정세
1. 정치 사회적 환경
2. 군사적 환경
Ⅱ. 전쟁의 경과
1. 임진왜란
2. 정유재란
Ⅲ. 임진왜란의 결과
1. 각국에 미친 영향
2. 동북아 국제 정세의 변동
본문내용
Ⅰ. 임진왜란 이전의 동북아 정세
1. 정치, 사회적 환경
(1) 조선
조선 왕조는 개국 백년 이래, 왕조 창업에 참여했던 개국 공신과 그 자손들, 그리고 세조의 집권을 도왔던 공신집단과 그 자손들로 형성된 이른바 훈구파 세력이 통치 집단의 근간을 이루었다. 조선왕조는 이들 훈구파 세력의 협력에 의하여 왕조 초기의 안정적인 지배체제를 확립하고 융성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훈구파의 지배체제는 권력남용과 부패로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6세기 후반의 조선왕조는 정치적으로 커다란 변동의 국면을 맞고 있었다. 우선 두드러진 것은 16세기 중반까지 극성을 부리던 척신정치(戚臣政治)가 종말을 고하고 그 동안 세 번의 사화를 통해 위축되어 있기는 했으나 끈질기게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던 사림(士林)세력이 조정에 대거 진출하여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선조의 즉위와 함께 나타난 이 커다란 정치적 변동은 그 잔재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조정에는 여전히 훈척계의 고위 신료들이 존재했고 사림파 역시 조정의 중심적 위치에서 강경파와 온건파가 서로 대립하며 내부 분열을 거듭하고 있었다. 선조는 신권을 견제하고자 정치적으로도 모호한 태도를 취했고 이는 동인과 서인의 대립이라는 붕당을 형성, 분열 양상을 조장하였다. 이렇듯 조선은 구체제의 잔재가 제대로 일소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사림파가 주도하는 신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도 못하는 과도기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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