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 현대 시론 연구 08/13 입니다.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서 론
1. 문제제기
2. 선행연구고찰 및 연구 방향
Ⅱ. 순수시론의 형성과 존재로서의 시론 -초기시론
1. 순수시론의 형성
2. 존재로서의 시론
Ⅲ. 변용과 창작 과정으로서의 시론 - 후기시론
1. 변용시론의 영향관계
2. 선시적 체험과 시적변용의 과정
3. 무명화의 의미
4. 변설이상의 시론
Ⅳ.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우리는 시를 살로 색이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우리의 시는 우리의 살과 맺힘이다.”
이는 박용철(1904~1938)이 『시문학』창간호의 편집 후기에서 한 말이다. 이는 곧 시를 살로 새기고 피로 쓰듯 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이렇듯 박용철에게 있어서 시는 절대를 의미하며 전심전력을 다해 매달리는 필생의 사업이었고 또 일체를 뜻했다.
그러나 정작 시인으로, 번역가로, 비평가로 그리고 편집자로서의 박용철의 문단 활동은 고작 7~8년에 불과했다. 그는 1930년 3월 창간된 『시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장했고, 1937년 1월 발표한 비평문「시적 변용(詩的 變容)에 대하여-서정시의 고고한 길」이 마지막 문단 활동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박용철은 다양한 문단활동을 하였으며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시인으로서 박용철은 그리 큰 평가를 받고 있지 않다. 우수와 상실감 등 다수의 서정시를 발표했지만 사변적이며 정신의 깊이가 없이 논리적으로 쓰려 했다는 것이다. 박용철 자신도 이를 느끼고 있었는지 『시문학』창간 이후 번역을 통한 서구시 소개와 비평 활동에 주력하였다.
번역가이자 문예지 편집자로서 박용철은 이에 비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세기 서구 낭만주의 시를 번역하여 자신이 주관한 문예지에 이를 소개하는 활동을 통해 순수시론을 형성하였으며,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등의 문예지를 편집․출간하여 프로문학과 민족문학이 딜레마에 빠져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져있던 1930년대 문단에 활력을 제공하였다.
마지막으로 본고에서 무게를 두고 다루고자 하는 것으로 비평가로서의 활동이다. 박용철은 시인으로 보다는 비평가로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다수의 비평문과 당시 문단의 이론가였던 임화 및 김기림과 시론에 대한 격론을 통해 순수시 운동, 존재로서의 시론, 변용의 시론 등을 전개하고 이론화 시켰다. 특히 그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시의 창작과정 및 방법론에 대해 처음으로 이론적으로 접근한 공과는 현재에도 높이 평가 되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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