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한용운론
- 최초 등록일
- 2007.07.30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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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용운을 시인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결론
본문내용
암울했던 일제시대,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사람이자 불심 깊은 승려였고 뛰어난 문학가이기도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다.
한용운은 1878년 충정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독립투사로서, 종교인으로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가 독립을 불과 한 해 앞둔 1944년에 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한용운은 16세가 되던 해, 동학혁명군의 봉기를 직접 목도하게 된다. 그때 아버지와 형이 의병에 가담했다가 전사하게 되는데 한용운은 이때부터 혁명가적 사상과 기질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난 다음해에 이를 복수하기 위해 동학군이 다시 일어나자 이에 가담, 기세등등하게 혁명군을 지휘하지만 마침내 패세에 몰려 탈출하기에 이른다. 그때 그의 나이 18세였다.
동학 혁명군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고 만해 또한 패전 장군으로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자 그는 피신 입산을 결정한다. 설악산에 들어간 그는 몇 해 동안 불경을 닥치는 대로 독파하고 좌선도 익힌다. 하지만 그의 입산이 오로지 신앙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만큼 그는 산에서 내려와 방랑의 길을 걷는다. 기울어져가는 국운에 대한 그의 번뇌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해가 현실에 대해 낙담하고 소극적으로 비판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동학 혁명군의 실패를 거울삼아 식견을 넓히고 힘을 기르는데 주력했던 것이다.
산 생활을 청산한 후, 그는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조선의 독립촌에 도착한다. 하지만 이상한 행색의 그를 동포들은 친일파로 오인, 잡아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훌륭한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고 그들의 대표와 담판까지 지은 후, 명함까지 얻어 돌아간다. 이 일화는 후대 사람들에게 그의 웅대한 기백과 담력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참고 자료
논문: 조종현, 한용운 사상연구, 1980.
논문: 고재석, 한용운과 그의 시대-2, 2004.
논문: 김선학, 시인 한용운론- 시집, 님의 침묵을 중심으로, 2004.
논문: 김선학, 시인 한용운론- 님의 침묵 재조명, 2002.
한계전, 한용운 님의 침묵.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신용협, 만해한용운의 시연구, 국학자료원,1994.
신동욱, 현대시인연구-8 한용운 편, 문학세계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