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동문선 중 초조장서에 대한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07.07.23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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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치원의 초조장서에 관한 분석 및 발표자료입니다.
목차
1. 작품 소개
2. 이 작품의 서사의 배경이 될 만한 작품
작품의 서사 배경 : 황소의 난
3. 서사 구조가 비슷한 작품
본문내용
1. 작품 소개
이 글은 중국 당나라 희종 시대에 황소의 난과 관련된 격문으로, 설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최치원은 13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했다. 이 격문은 황소에게 가담한 조장(趙璋)에게 보낸 것으로, 그로 하여금 황소를 설득하게 만들어 전쟁을 끝내고자 한 전략에서 쓴 것이다. 상대는 명분이 없음을 밝히고 있으며, 이쪽은 힘과 지혜를 두루 갖추었을 뿐 아니라 덕도 갖추었고, 또 하늘이 도운다는 것을 내세우면서, 적장에게 항복을 권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최치원은 조장을 위협과 회유로써 항복을 권유하고 있다. 또한 조장을 설득하기 위하여 비유적인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커다란 집이 이루어지는데 제비가 서로 인사를 한다고 하는 것은 이쪽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고, 적들의 상황은 목욕할 물을 갖추어 놓으면 살 곳이 없어지는 이(蝨)나 뿔을 뽐내는 사마귀, 엄니를 갈며 항거하는 알류 혹은 ‘대수롭지 않은 전략을 지닌’ 올빼미로 비유하고 있다.
「초조장서」는 반역 도당의 우두머리에게 항복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쓰여진게 아니라 이와 같은 격문(檄文)을 공개된 곳에 게시함으로써, 반역자에게 보내는 글이기도 하면서 백성들에게 반역의 세력들이 곧 진압되므로 동요하지 말라는 당부의 글이 되기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글은 적장에게 항복을 권유함과 동시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던 것이다.
2. 이 작품의 서사의 배경이 될 만한 작품
작품의 서사 배경 : 황소의 난
당나라 말기 연간(875∼884)에 일어났다. 당나라 말기에는 지방 번진의 세력이 늘어나고 중앙관리의 당쟁과 환관의 횡포가 겹쳐서 지배력이 흔들리고, 인민에 대한 수탈도 강화되어 토호나 상인층도 반왕조의 경향으로 돌아섰다. 또한 전국에 기근이 내습하여 사회적 불안은 절정에 달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 하에서 소금의 암상인으로서 반체제적 활동을 해오던 산둥[山東]의 왕선지(王仙芝) ·황소(黃巢) 등이 난을 일으켰다. 선지가 죽은 후 황소는 그 잔당들을 모아 지도자가 되었다. 그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자와 종래부터 부하였던 자들을 핵심으로 하여 파산 농민이나 유랑의 무리, 반사회적인 분자들도 끌어넣어 약탈활동을 하며 산둥 및 후난 ·후베이로 대이동을 전개하여 880년에는 뤄양 ·창안 등을 함락하자, 희종은 쓰촨으로 망명하였다.
황소는 장안에 스스로 정권을 세우고 국호를 대제(大齊), 연호를 금통(金統)이라 부르고 항복한 관리도 기용하여 통치를 굳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관중[關中]의 정권은 경제적 기반이 없어서 당나라 왕조를 돕는 투르크계 이극용(李克用) 등 토벌군에게 격파되어 3년 후에는 창안으로부터 동방으로 퇴각하여 이듬해 산둥의 타이산산[泰山] 부근에서 자결하였다. 이 난은 고대적인 당나라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